친구와 주기도문을 공부할 때 일이다.
“일반적인 실수가 아니라 너에게 못된 짓을 한 사람이 있다면 몇 번이나 용서해줄 수 있어?”
“한 번.”
난 친구의 대답에 조금 놀랐다.
사람들과 잘 지내는 스타일이라 최소 세 번은 나올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
“응.”
“보통 세 번 정도까지는 하지 않니?”
“실수가 아니라 못된 짓이라면 한 번이면 충분해. 사회 생활을 하니까 안 보지는 않겠지만 굳이 가까운 관계를 맺지는 않을거야.”
“그것도 살아가는 지혜일 수 있겠다. 만약 자네 외아들이 잘못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줄거야?”
“끝도 없지.”
이 대답에도 놀랐다.
앞에서 단호한 대답을 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아들이라도 엄하게 대할 수도 있겠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왜?”
“아들이잖아.”
이 대답이 감동이었다.
맞다, 아들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도 사람을 용서하잖아. 아들이면 이미 무한대로 용서할 것을 생각하잖아. 그런데 하나님이 용서를 해달라고 기도하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용서해주겠다는 의미겠네.”
“그렇지. 그런데 그냥 용서가 아니야. 하나님이 그냥 용서하면 혹시 딱 한 번으로 그칠 수도 있잖아. 자넨 이제까지 죄를 몇 개나 지은 것 같나?”
“수도 없이 많지.”
“그 많은 죄를 용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되겠네.”
“그래, 하나님이 ‘용서해달라고 기도해라. 그러면 용서해줄게.’라고 하신 건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너를 아들로 삼겠다.’는 말씀인 거야.”
“용서보다 더 깊은 뜻이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