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와 맥가이버 칼(3)

제주에서의 일정을 마친 후, 여유있게 공항에 도착해서 공항내 식당에서 밥을 먹자고 했기 때문에 렌트카 반납을 일찍했다.
그런데 렌트카 회사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바로 배차되지 않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공항수속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았다.
공항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어제 통화한 번호로 전화했다.
전화를 공손히 해달라는 안내 후, 다른 음성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제 수하물을 못찾았던 사람인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강신욱입니다.”
“아, 예, 여기 있습니다. 오시면 됩니다.”
“어디로 가야 할까요?”
“저희가 보안구역에 있어서 저희 사무실로 오실 수는 없고요. 1번 게이트 들어오셔서 엔제리너스 카페 앞에서 연락주시면 나가서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제주공항에 도착한 후, 나는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열심히 달렸다.
1번 게이트가 멀리 구석에 있어서 계속 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엔제리너스가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다가 다시 전화했다.

“1번 게이트 안에 들어왔는데 엔제리너스가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에 계세요?”
“3층 로비입니다.”
“1층 1번 게이트입니다.”
1층까지 열심히 달렸다.
엔제리너스가 보였다.
다시 전화했다.

“엔제리너스 앞입니다.”
“곧 나가겠습니다.”
잠시후 보안구역에서 나온 직원이 주황색 봉투를 들고 나왔다.
“연락처 번호 뒤 네 자리만 말씀해 주세요.”
“OOOO입니다.”
직원은 “네, 확인되었습니다.”라며 내게 건네줬다.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난 또 3층으로 달렸다.
수속 시간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창구로 가서 봉투를 내밀었더니 벌써 눈치를 채고 있었다.
기존 수하물 태그를 처리하지도 않고 그냥 그 위에 새로운 태그를 붙였다.
“이것 딴 데로 가면 안되는데요.”
“예, 부산으로 갑니다.”
경험이 많아 보이는 직원은 미소와 함께 상냥하게 대답했다.
내 손엔 또 하나의 수하물표가 쥐어져 있었다.

출발 30분 전 겨우 검색대 앞에 도착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공항 안에서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땀이 삐질삐질 나왔다.
탑승구 앞에 앉았을 땐 맥가이버 칼을 잘 찾았다는 기쁨보다 몸과 마음이 털린 것 같은 허기를 느껴야했다.

김해공항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수하물 찾는 곳에서 기다렸다.
여행용 가방이 잔뜩 나오는 곳에서 회색 플라스틱 상자가 하나 나왔다.
그 안에는 주황색 봉투 하나만 들어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봤다.
특수임무를 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서 맥가이버 칼이 담긴 주황색 봉투와 수하물표 두 개를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었다.
‘이게 뭐라고 버리지 못했을까?’
‘그래도 스위스 여행 기념인데 잘 남겨서 다행이다.’
생각이 오락가락했다.
새끼 손가락보다 작은 맥가이버 칼 때문에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좋은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