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고독사 예방 사연

지난 목요일(7/17) 밤 가끔 테니스를 치던 클럽의 어르신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요즘 같이 테니스를 치는 은퇴목사님이 어르신과 어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저께까지 잘 나오시던 분이 나오지도 않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올해 여든이 넘어 고문으로 불린다는 이 어르신(알고보니 88세)은 테린이인 나의 게임 파트너가 되어주시기도 했다.

금요일(7/18) 아침 주소와 연락처를 받아 찾아갔다.
전화를 하고 초인종을 눌러 요란한 소리가 났지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관리사무소를 찾아가서 사정을 말하고 가족에게 연락해달라고 했다.
“개인정보라서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누가 알려달라고 했나요? 어김없는 분이 연락도 없고 나타나지도 않으니 걱정이 되니까 그런거죠.“연락처 남겨주시면 나중에 연락하고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집앞에서 30분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아 다시 관리사무소를 찾아갔다.
”연락해 보셨습니까?“
”저희가 연락해보고 알려드린다고 했잖습니까?“
”그러니까 연락해 보셨냐고요? 독거노인이신데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어쩌려고 이러세요? 제가 전화번호를 가르쳐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전화 한 통 해달라는 거잖아요.”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난 화가 나서 나왔다.
바로 가까운 지구대로 신고했다.
이내 경찰차가 왔다.
경찰에게 설명중에 관리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서울 사는 딸에게 전화를 했더니 자기 번호를 내게 알려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가서 닥달을 하니 그제서야 연락하는 관리소 직원의 행태가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경찰이 내 폰으로 딸과 통화를 했고 비밀번호를 받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은 불이 꺼진 채 어수선했다.
앞장 선 경찰이 문간방 안에 쓰러져 있는 어르신을 발견했다.
다행히 숨을 쉬고 있다고 했다.
어르신은 눈은 떴지만 말이 어눌했고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 상태로 소변을 본 모양이었다.
냄새가 방에 진동했다.
얼마전에도 테니스장에서 인사했던 그분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상황을 자녀에게 알렸더니 병원으로 모셔달라고 했다.
경찰이 119를 불렀다.
문제는 자녀가 모두 서울에 있어 보호자가 없다는 것이다.
경찰이나 119대원이 나를 쳐다봤다.
내가 병원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난 오후에 비신자를 만나는 약속을 사정을 설명하고 다음주로 연기했다.

119대원의 안내에 따라 앰뷸런스를 타고 백병원 응급실에 왔다.
가족은 오후 6시쯤 도착예정이다.
나는 보호자 명찰을 패용했다.
썰렁한 응급실에 앉아있는데 기분이 묘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해서 어르신이 쓰러져계셨고 119를 통해 응급실로 옮겼다는 사실을 알렸다.
다음부터 이런 민원에 신속하게 대응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수고 많으시겠네요.“
전화기 너머로 미안한 뉘앙스가 느껴졌다.
다음에 혹시라도 이런 문의가 온다면 늑장부리지 않길 바란다.

의료진은 내게 이것저것을 묻는다.
나는 가족이 아니라 지인이라서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다고 했다.
일단 보호자니까 내게 기저귀와 물휴지를 사오라고 해서 사왔더니 환자복으로 갈아입힌 후 기저귀를 채웠다.
이어서 채혈, CT, 심전도 등 검사를 진행했다.
오후 4시가 가까이 되었을 때 검사결과가 나왔다.
뇌경색이라고 한다.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난 어르신에게 말을 붙였다.
“고문님,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누구세요?”
“테니스장에서 인사도 드리고 제 공도 받아주셨습니다.”
“기억 안나요.”
“OOO 목사님과 약속했던 것 기억하세요?”
“기억합니다.”
“그 목사님과 같이 테니스 쳤던 사람입니다. 저도 목사입니다.”
“아~~~ 목사님이 집에도 못가고 고생이 많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고문님이 큰일날 뻔했는데 그 목사님과 약속한 것 때문에 그 목사님이 고문님을 챙겨보라고 연락해서 다행히 이렇게 된 겁니다.”
“참 고맙네요.”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갑자기 이렇게 되셔서 너무 황당하고 속상하시겠습니다.”
“답답합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습니다.”
“뇌경색이라고 하니까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말도 어눌하게 되셔서 너무 답답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목사니까 해드릴 말씀은 너무 힘들 때 ‘예수님, 도와주십시오.’라고 속으로라도 말씀하시라는 겁니다.”
“우리 아들딸은 교회에 다니고 나보고도 가자고 하는데 나는 안가지더라고.”
“꼭 교회에 가야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고문님은 이제 몸이 불편하셔서 더 교회에 가시기도 어렵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예수님, 도와주십시오.’라고 해보십시오.”
“예수님, 도와주십시오.”
“예, 잘하셨습니다. 마음이 힘드실 때 잊지 말고 꼭 그렇게 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오후 5시 30분에 서울에서 아들이 도착했다.
나는 7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아들은 내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는 목사라고 밝히지 않고 그냥 테니스 치다가 만난 사람이라고만 소개했다.

차를 어르신 집 앞에 세워두었기에 돌아가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뛰었지만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아 온몸이 젖었는데, 도착해보니 차 앞유리에 주차금지경고문이 붙어있었다.
그 아파트 차량이 아닌데 장시간 주차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조금 시간을 보내니 그제야 안도감이 밀려왔다.
나도 적잖이 긴장했던 모양이다.
만약 내가 관리소에서 알려주겠다는 말만 믿고 그냥 가버렸다면,
깜빡 잊고 하루이틀 지나서 관리소에 문의했다면,
내가 지구대에 신고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해봤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페이스북에 이 사연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관리소 직원의 행태에 분노했다.
그리고 내게 생명을 살렸다며 고맙다고 댓글을 달았다.
5시간 넘게 응급실의 강한 에어컨 바람을 맞았더니 냉방병같은 증상이 생겼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저녁 내내 가만히 쉬어야 했다.

영적이든 육적이든 생명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큰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런 면에서 교회나 성도가 너무 쉽고 짧은 시간에 전도하고 영혼을 구원하려는 것은 영혼의 가치를 가볍게 보는 것 때문은 아닌지 염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