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담임목사를 사임하고 혼자 부산에 내려와서 지낼 때이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 단지라 싱글 직장인, 신혼부부, 아이가 어린 가정, 아니면 어르신들이 많았다.
혼자살이, 부산살이가 조금 익숙해져서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 어떤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그 할머니는 아파트를 가로지르는 메인도로 중간쯤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늘 앉아 있었다.
또 특이한 점은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란 점이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제일 안쪽 동이라 운전하면서 지나칠 때가 많은데, 한눈에 봐도 연세가 많고 행색이 너무 초라한데 줄담배를 피니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다 비슷한 분위기의 영감님과 대화를 주고 받을 때도 있었지만 거의 혼자 있었다.
하루는 내가 먹을 과자와 함께 할머니에게 건넬 한 봉지를 더 사들고 차를 세웠다.
인사를 하고 안쪽 동에 사는 사람이라 소개하고 과자를 건넸다.
할머니는 환한 얼굴로 고맙다며 과자를 받았다.
그후로 종종 할머니께 인사도 하고 과자도 건넸다.
나중에 할머니 연세가 91세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서울로 올라가면서 할머니에게 따로 찾아갔다.
“할머니, 저 기억하시지요?”
“알지”
“제가 서울로 이사가서 한동안 지내야 합니다”
“서울?”
“예, 서울요. 제가 다시 내려올 텐데 그 때까지 건강하게 계십시오”
“잘 가시오”
만 2년만에 부산에 다시 내려왔다.
그 아파트 근처 아파트로 이사왔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그새 돌아가셨나 싶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할머니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부산도 날이 너무 추워서 나오실 수가 없었나 보다.
그러나 대화의 기회를 찾지 못했다.
주로 차를 타고 이동하며 길가에 있는 할머니를 볼 뿐이었다.
오늘 기회를 잡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담배를 입에 물고 바람이 불긴 하지만 봄날씨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낡고 시커먼 패딩을 입고 있었다.
일부러 차를 세우고 내가 간식으로 먹으려고 차에 둔 일일견과류 한 봉지를 들고 갔다.
바로 옆에 같이 쪼그려 앉았다.
“할머니, 저 기억하시겠어요? 예전에 저 안쪽 동에 살았는데”
할머니는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제가 과자도 드리고 했는데요”
“아~” 조금 기억하시는 것 같았다.
“제가 다시 부산에 내려왔습니다”
“어…”
“이것 견과류인데 드십시오”
“고마워”
오늘따라 할머니가 안돼 보였다.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죠? 그 때 아흔 정도 말씀하신 것 같은데”
“아흔 너이”
“제가 2년만에 부산 내려오고 3년째이니까 94세 맞으시네요. 한동안 안보이셔서 어디 편찮으신가 했습니다”
“안 아파”
“할머니, 혼자 사세요?”
“어”
“자녀분은 없으세요?”
“딸 서이, 아들 하나”
“멀리 사시나 봐요”
“중국, 일본, 미국…”
솔직히 믿어지지 않았다.
자녀들이 부모를 방치하는 핑계로 그렇게 이야기한 걸 믿으시는 건지, 자녀들이 그렇게 있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고 믿고 싶으신 건지.
“남편분은 안 계세요?”
“재작년에 죽었어”
‘아, 그 때 그 비슷한 분위기의 할아버지가 남편분이셨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순간 이미 충분히 검고 주름져 잘 알아볼 수 없는 할머니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많이 외로우시구나, 힘드시구나’
“또 오겠습니다. 건강하세요”하고 일어섰다.
‘손을 한번 잡아드릴 걸 그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