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디바의 첫 공연

자녀의 순번으로는 셋째요 첫째 딸은 뮤지컬 배우 지망생이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걸그룹을 하겠다고 오디션도 보러 다녔는데, 중학교에 들어 가서는 아무래도 자기는 뮤지컬 스타일같다고 했다.

우리 가정이 부산으로 이사하기 직전 고등학교 입시가 있었는데, 부산에는 브니엘예술고등학교만 뮤지컬 전공학생을 뽑았다.
중3 여름에 고입검정고시를 보고 실기시험을 위해 학원을 갔을 때 학원에서는 “이제 와서 어떻게 합격을 하겠다는거냐?”라는 식으로 문책을 받기도 했지만, 감사하게도 합격의 소식을 받게 됐다.

셋째가 학교에 적응할 무렵 고3이 중심이 되는 뮤지컬 정기공연을 준비한다고 했다.
뮤지컬 전공이니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집에서는 노래 연습을 하고, 학교에서는 춤 연습을 했다.
중간에 학생들끼리 티격태격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좀 지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얼굴은 늘 기대하는 빛이 역력했다.

브니엘예술고등학교 뮤지컬 정기연주회 포스터 [사진캡처 강신욱]

공연포스터가 나왔는데, 페임이었다.
미래의 스타를 꿈꾸는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딱 자기들의 이야기이니 몰입하기는 좋은 소재라고 생각했다.

지난 6월 10일이 공연일이었다.
6월 9일이 생일인데, 공연전날이라 연습하느라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할 여유가 없었다.
물론 밤늦게 가족끼리는 생일축하를 했고, 공연을 마치고 이틀에 걸쳐 여러 친구들과 두 번의 생일파티를 했다.

대동대학교 한울홀에 마련된 공연무대 [사진 강신욱]

코로나로 가족 전부가 공연을 보러 갈 수 없었다.
많이 편찮으셔서 거동이 불편한 장모님이 더 늦기 전에 외손녀의 공연을 보고 싶어 하셔서 우리 부부와 장모님만 관람신청을 하고, 조금 일찍 공연장에 갔다.
덕분에 가장 앞줄에 앉아 셋째의 공연 모습을 보게 됐다.
무대를 보는 순간 내가 긴장이 되어 무대 뒤에 있는 우리 셋째는 얼마나 떨릴까 싶었다.

에르메스 넥타이를 하고 공연을 기다리는 중

우리 부부는 네 명의 아이들에게 각각 별명을 붙였다.
첫째는 나이키, 둘째는 베이프, 셋째는 에르메스, 넷째는 프라다이다.
첫째와 둘째는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붙였고, 셋째와 넷째는 아직 아기 때라 명품 브랜드를 붙였다.
그 중 에르메스인 셋째의 공연을 보는 것이니 응원하는 마음에서 에르메스 넥타이를 맸다.

무대가 시작됐다.
고3을 위한 무대라 고1인 셋째는 당연히 엑스트라인 줄 알았다.
첫 무대에서 셋째는 뒷줄에 서서 춤을 추고 노래를 했다.
당연히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한 곡 두 곡이 지나가며 무대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거의 부모와 친구뿐인 학교 정기연주회라 촬영이 허락됐다.

아빠 눈엔 무대 중앙에 있는 걸로 보이는 셋째
좌우의 학생들 가운데서 춤추는 셋째
멋진 포즈를 보여 준 셋째
눈에 띄게 춤을 잘 춘 셋째
다른 엑스트라들과 표정연기 중

무대를 보면서 ‘우리 딸은 얼마나 떨릴까?’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우인 것을 알게 됐다.
셋째는 무대를 즐기고 있었다.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출 때 표정에서 그게 나타났다.
‘하고 싶은 것을 하니 저렇게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나도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다.

자기들의 이야기여서 그런지 분명 어색하고 모자란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 잘 표현한 것 같다.
한 시간 반여 공연을 보며 ‘다들 애썼겠다’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공연이 끝났다.
관객들을 향해 인사하는 것도 진짜 뮤지컬 배우들이 하는 것처럼 했다.
무대 매너도 공부이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다.

관객석의 불이 켜졌을 때 사람들은 준비해 온 꽃다발을 자녀에게 전달했다.
셋째는 올 때 꽃다발을 준비해 오라고 했다.
색깔은 핑크로 하라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앞줄에 앉아있던 아내도 미리 준비해 온 꽃다발을 전달했다.

꽃다발을 받아 든 셋째는 다시 같이 공연한 친구들 틈으로 돌아갔다.
눈물을 훔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친구들도 그랬다.
오랜 기간동안 열심히 마음을 다해 연습했는데, 최선을 다해 공연한 후 그 정서가 눈물로 터진 것 같다.

친구들 틈에서 눈물 닦는 셋째
서로 수고했다며 격려하는 학생들
공연 후 단체촬영

앞으로 셋째에게 어떤 길이 펼져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연계가 얼마나 어려운지 조금 알지만 막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열심히 하고 행복해 하면 아비로서 좋다.
아빠 눈에는 가장 잘했지만,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오래 찬사를 받는 디바가 되면 정말 좋겠다.
첫 공연에 정말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