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과 속도

둘째와 서울에서 같이 차를 타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이제 또 한 학기를 거의 마치게 되었는데 소감이 어떠니?”
“처음엔 정말 정신 없었는데 나중엔 좀 적응이 되었어요”
“그래, 학기 초에 잠도 거의 못자고 고생 많았다. 또 다른 건 없니?”
“처음엔 고시원 좁은 방에서 지내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 좀 혼자서 생활하는 것에 적응한 것 같아요”
“어떻게?”
“과제하다가 새벽 두세 시 쯤 되었는데 잠이 금방 오지 않아 바깥에 나가 걸었어요. 아무도 없고, 신호등이 노란불로 점멸하는 길을 걸으면 기분이 묘하고 좋아요”
“걸으면 좋지? 꼼짝도 하지 않던 네가 드디어 걷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됐구나”
“그런 것 같아요”

“모든 일에는 속도와 방향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도에만 신경을 쓴단다. 집중해서 빨리 끝내려고 하는거지. 너도 과제할 때 그렇지?”
“예”
“그런데 속도를 올리는데 집중하면 방향을 놓치게 될 위험이 있어. 자전거를 탈 때 속도를 높이려고 페달을 마구 밟으려고 하다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지?”
“그러네요”
“정말 중요한 것은 방향이야, 그래서 가끔씩 고개를 들어 방향을 점검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속도를 줄여야 해.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점검하는 데 좋은 방법이 나가서 걷는 거야”
“그래서 아빠와 엄마가 걷는 거군요”
“그럼. 걸으면 좀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없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딴 생각을 하며 더 창의적인 접근을 하게 되기도 하니까. 너도 과제할 때 진도가 안나갈 때가 있지?”
“예”
“그 땐 집중하려고 해봐야 집중도 안돼. 이미 집중의 한계에 도달한 거니까. 그 땐 나가서 걸으며 방향을 점검하는거야.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도 낭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버는 거야. 훨씬 효율이 오르게 되니까”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은 속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방향이다.
자기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방향이 바르지 않으면 속도가 빠를 수록 더 위험하게 된다.
속도도 중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