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No, 애완견 ‘치노’

지난 6월 26일부터 애완견을 키우게 됐다.
우리 부부는 짐승이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살며 냄새를 풍기고, 짐승이 자신이 사람과 맞먹으려 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그동안 아이들이 개나 고양이를 키우자고 간청해도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가면 키운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나 어찌 인생에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있는가?
언젠가 이 원칙이 무너질 줄 알았지만 예상보다 일찍 그 때가 왔다.
복잡한 사연으로 마당있는 집도 아닌데 애완견을 키우게 됐다.

다른 가족들은 개나 고양이가 상관없었으나 아내가 고양이를 너무 무서워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뱀이나 이구아나가 아닌 게 어디인가.

나는 이왕이면 유기견을 키우자고 했다.
버림받은 아픔이 있는 개를 우리집이 잘 키워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가족 모두 좋아했다.

유기견 보호소를 수소문해서 갔다.
연중무휴란다.
사람들이 정말 개나 고양이를 많기 키우는가 보다.

사정을 설명했더니 먼저 유기견을 보여줬다.
나는 큰 개가 좋지만 큰 개는 정말 마당이 있어야 키울 수 있고, 아파트는 개에게 고문이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아내가 어릴 때 개에게 물린 경험이 있어 큰 개를 많이 무서워한다.
작은 유기견으로 눈을 돌렸는데 사납거나 병이 있다.
처음 애완견을 기르게 되어 아무 경험도 없는데 개의 성격치레나 병치레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일반분양을 받았다.
우리 가족의 눈을 한번에 사로잡은 정말 귀여운 녀석이다.
게다가 털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고 하니 금상첨화이다.

막내 다리 위에 앉은 치노 [사진 강신욱]

다시 테이블에 앉아 반려동물 등록을 하라는데, 난 불편했다.
난 짐승하고 반려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난 아내하고 반려하고, 사람과 반려한다.
짐승은 그냥 애완이다.

말이 나온 김(이런 이야기를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나은 건가)에, 짐승을 사람처럼 ‘애기’라고 부르거나 짐승에 대해서 본인을 ‘아빠’나 ‘엄마’라고 칭하는 것을 정말 불편하게 생각한다.
무슨 마음인지 이해는 되지만, 호칭까지 그렇게 하는 건 과하다는 생각이다.

등록을 마치고, 보험도 들고, 대금도 치르고, 개를 키우는 데 필요한 세트 일체까지 사서 말티즈와 푸들 교배종이라는 ‘말티푸’ 두 달 된 암컷 새끼를 데려왔다.
두어 주 걸쳐 여기저기 둘러 보자며 나갔는데 한 보따리를 안고 돌아왔다.

그럴 계획이었으니 당연히 이름 따위는 생각도 한 적이 없다.
아내가 카푸치노 색깔과 비슷하니 ‘치노’라고 짓자고 해서 그렇게 됐다.

우리집에 치노를 위해 준비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누구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집에 오니 치노가 있을 곳이 없었다.
울타리를 두르고 가장 큰 배변판을 놓고 물통과 식판도 놓았는데 정작 집이 없다.
얼른 사료가 담겼던 박스를 적당히 오리고 안에 좋은 수건을 깔아줬다.

급히 만들어진 치노네 집
곤히 잠든 치노

사료 냄새 덕분이었을까, 치노는 머뭇거림도 없어 쑥 들어가서는 안에서 계속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수건에 몇 번 비비적거리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이 변화가 얼마나 피곤했을까.
치노가 잠든 것을 보고 우리 가족도 한숨을 돌렸다.

아니 몸은 한숨 돌렸지만, 개가 자는 동안 애완견을 키우는 법 공부를 시작했다.
계약서와 함께 건네 받은 책자와 안내지가 몇 장 있었는데 가족들이 돌아가며 읽었다.
치노는 첫 잠을 오래 잤다.
그새 사료 당번은 셋째, 배변 처리는 막내가 하기로 했다.
다행이다.

사료 박스를 집으로 사용했으니 치노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집안에 사료냄새가 진동했다.
우리 가족이 냄새에 민감하기도 하거니와 앞뒤로 창을 열어 환기를 시켜도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집이 너무 작아 안에서 방향 전환을 할 때 불편해 보였다.
치노 집을 새로 지어주기로 했다.
물론 마트나 애견샵에 가면 예쁜 것이 많겠지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냄새에 민감한 녀석이니 이왕이면 좋은 냄새를 맡으면 좋겠다 싶어 멜론 박스를 베이스로 삼았다.
한쪽 면을 오려내어 입구로 삼았다.

한쪽 면을 없앤 멜론 박스

애완견 울타리 박스를 오려 지붕을 만들었다.
내 마음에 둔 두 가지 공정기준이 있었다.
하나는 전통적 개집 스타일로 짓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독한 냄새가 나니 본드를 쓰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마분지로 공작하던 때를 떠올리며 지붕을 만들었다.

지붕을 아래서 본 모습

개집을 만들면서 신나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치노가 새 집을 좋아하고 즐겼으면 하는 바램도 생겼다.
이런저런 기대로 흐뭇한 마음이 드는데, 문득 하나님이 떠올랐다.
‘아, 하나님도 사람을 위해 천지를 창조하시며 이런 생각을 하셨겠구나’

완성된 치노의 새 집

잘 만들어졌나 싶어 지붕을 아래 박스 위에 일단 얹어 봤는데 잘 맞아 떨어져 따로 고정시키지 않더라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치노가 좋아해 주는 일만 남았다.
옛집을 빼고 새 집을 넣었다.
적응을 위해 쓰던 수건을 그대로 깔아줬다.
고맙게도 치노는 별 거부감없이 새 집에 쑥 들어갔다.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것 같더니 이내 몸을 붙이고 잠이 들었다.

새 집에서 잠든 치노

집이 갑자기 넓어져 친구겸 쿠션겸 곰인형을 넣어줬다.
아침에 보니 곰돌이 팔베개를 하고 자고 있다.
조금 지나니 아예 고개를 얹고 편하게 잠을 잤다.

곰인형에 고개를 얹고 자는 치노
거의 선 듯 곰인형에 고개를 얹고 자는 치노

새 집에 마음을 붙이고, 곰인형에 마음을 붙여 참 다행이다.
이제 배변 훈련 등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데, 내가 ‘개 아빠’가 되든가 ‘개의 집사’가 되지 않도록 정신부터 차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