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기도를 통해 되찾은 기도제목 – 부산을 위한 기도

내 스마트폰 메모에는 내가 매일 기도하는 사람들의 명단이 있다.
처음에는 20명 정도였는데 점차 늘어 32명이 됐다.

거기엔 고등학교, 대학 친구들, 서울에서 2년간 지낼 때 만났던 개인적으로 만났던 비신자들, 서울광염교회 성도의 비신자 남편들, 선교사님들, 부산에서 함께 성경공부를 시작한 비신자들과 그의 배우자들 이름이 있다.

난 원래 기도제목을 따로 적어놓고 기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기도하면서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대로 소위 이끌리는 대로 기도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기를 작정한 때부터 명단을 적었다.
아침에 잠에서 눈을 뜨고, 밤에 자려고 눈을 감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번 금식기도를 통해 되찾은 기도제목이 있다.
누구의 성명이 아니기에 기록해 놓지 않았던 기도제목이다.
그것은 살기좋은 부산과 부산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만, 그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는 건 조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역, 삶의 환경, 제도, 문화, 교육 등등 여러 가지 여건들을 놓고 기도해야 한다.

부산이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실상은 제2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산업, 금융, 문화 등 여러 여건에서 서울은 물론이고 수도권에 비해도 떨어진다.
인구가 줄고 특히 젊은이들이 빠져나간다고 걱정이다.
서울 강남구나 서초구가 아닌 부산 해운대구가 1억 원이 넘는 고급승용차 등록숫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는 걸 자랑하기에 부끄럽다.
부산의 산업구조가 취약하고 미래산업은 더욱 걱정스럽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고급승용차가 많다는 건 그만큼 부산의 빈부격차가 크다는 것과 부산이 소비도시가 되어가는 걸 나타내기 때문이다.

원래 기독교인은 살기 좋은 곳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명지를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내가 사는 곳이 나의 사명지라면 그 사명지를 위해 축복하고 살기 좋은 곳이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다.

나는 좀더 살기 좋은 부산을 위해 정치인의 이벤트성 사업이 아니라 기본 구조가 바뀌도록 기도한다.
부산 사람들이 부산을 좋아하고, 부산의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이 사는 땅을 위해 간구하도록 기도한다.

금식기도를 통해 좀더 폭넓게 기도하게 되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