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암환자와의 통화

지난 9월 8일에 있었던 일이다.

“목사님”
내가 오래전 주례했던 커플의 신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어렵게 검사를 했는데 말기암이라는 소식을 이미 들었다.
서울의 유명 병원에 급히 입원한 상황에 시어머니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내게 전화한 것이다.

그 어머님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내가 결혼식 주례를 했지만 신랑 어머님의 얼굴까지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그분도 나를 아들 결혼식 주례였다는 것 정도로만 기억하실 것이다.
게다가 병세를 아신 후로는 거의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결혼식 주례해 주신 목사님’이라며 며느리가 통화를 성사시킨 것이다.

“어머님, 제가 글 때 아드님 결혼 주례였는데 기억하시겠습니까?”
“예”
그 어르신이 대답을 하시는 것만으로 내겐 격려가 됐다.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
“제가 듣기로 어머님께서 시장에서 힘들게 가게를 하시면서 집안을 일으키시고 자녀들 공부도 다 시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려운 긴 세월을 잘 버텨 오셨던 것처럼 이번 일도 강한 마음으로 잘 이겨 내시면 좋겠습니다”
“예”

이 어머님은 주일에도 시장에서 장사하느라 교회 출석을 할 수가 없다.
신앙을 받아들일 수도, 성장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어머님, 옆에서 아무리 며느리가 수발을 잘해줘도 아픈 건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그 때 너무 힘드시죠?”
“예”
“그 때 작게라도 소리내어 ‘예수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생명을 주신 분입이다. 성경을 잘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겸손히 구하면 예수님은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저를 한 번 따라해 보시겠어요? ‘예수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
“잘 하셨습니다”

“제가 목사라서 해드릴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습니다. 제가 한번 어머님을 위해 기도해 드려도 될까요?”
“예, 감사하지요”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귀에 대고 들으시면 됩니다”
나는 전화를 붙잡고 길게 할 수 없는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마치고 어머님은 “감사합니다”라고 연거푸 말씀하셨다.
“어머님, 부산에 내려오시면 제가 한번 찾아 뵙겠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며느리와도 인사를 한 후 전화를 끊었다.

며느리로부터 후일담을 들었다.
어머님이 그렇게 부드럽게 반응하시기가 쉽지 않은데 정말 순하게 대하신 것이라고.
목사님이 기도하는데 가만히 눈물을 흘리셨고, 기도한 후에도 눈물을 흘리셨다고.

선친을 통해 우리 가족도 겪은 일이지만, 암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참 어렵게 만든다.
재정은 차치하고,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체가 어렵고, 그후로 그 복잡한 정서를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가족 모두가 당사자가 되어버린 입장이라 누구도 객관적이 될 수 없다.
그 압력을 조금이라도 해소해 줄 심리적 통로 역할이 필요하다.

어려운 환자와 가정을 위해 그 역할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이제 약속을 잡아 한번 뵈러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