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입대

지난 10월 5일 둘째가 철원에 있는 백골부대에 입영했다.
둘째는 입대를 앞두고 지난 학기부터 머리를 길렀다.
한 달 전쯤에는 탈색을 몇 번하며 약간 붉은 빛을 띠는 노란머리가 되기도 했다가, 초록 빛을 띠는 노란머리가 되기도 했다.
입대하기 전에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일이라 생각하기에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미장원에 따라가서 내가 계산해 주었다.

입대전 그 길고 노란 머리를 짧게 깎고 다시 까맣게 염색을 해야 했다.
부산에서는 미루고 미루던 머리를 전날인 10월 4일 안양에 가서 내가 약 10년간 머리를 깎았던 미장원에 가서 했다.

머리를 짧게 깎는 둘째 [사진 강신욱]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더니 첫째가 아빠 눈매를 닮았다고 했다.
나도 둘째가 첫째보다 나를 더 닮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 사진에서 나와 정말 닮은 눈빛에 놀랐다.

10월 5일 철원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별로 시간이 없을 것 같아 부대 앞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한 손으로 둘째의 손을 잡고 소리를 내어 기도했다.
구약의 축도라는 아론의 축도(민수기 6:24-26)로 축복하며 기도했다.
나는 운전하느라 눈을 뜨고 있었지만,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던 둘째는 “아멘”이라 답했다.

신병교육대 앞에는 많은 차량이 몰렸는데, 예상대로 안내하는 장병이 입영대상자만 하차할 수 있고 가족들은 바로 차를 빼야 한다고 했다.
차 안에서 기도하길 정말 잘했다 싶었다.
앞자리에 앉았던 둘째가 인사를 하고 내렸다.
뒷자리에 앉았던 아내가 앞자리로 옮겨탄다는 핑계로 잠시 내려 마지막으로 둘째를 껴안았다.
뒷차로 따라왔던 처남이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줬다.

둘째를 안은 아내 [사진 처남]

엄마를 한 번 껴안은 둘째는 성큼성큼 부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너무도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차창 유리를 분명히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둘째의 차박차박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안내장병의 수신호에 따라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하고 운전해서 부대 앞을 빠져 나와야 했다.

신병교육대로 걸어 들어가는 둘째 [사진 강신욱]

차가 부대를 벗어나자 아내는 손수건을 꺼내서 얼굴에 갖다 댔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나는 아내의 눈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들 중 막내라서 그런지 나도 울컥했지만 꼬불꼬불 산길을 운전하느라 눈물을 흘릴 틈이 없었다.
그나마 그 덕분에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다.

철원에서 부산까지 내려오는 길은 무척이나 멀고 길다.
네비게이션은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빠른 길을 제안했지만, 아내는 둘째와 같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춘천까지 가서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어지는 장거리 운전으로 너무 피곤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둘째도 그랬을 것이다.
절로 둘째를 위한 기도가 나왔다.

하나님, 
제 아들이 몸과 마음이 힘들고 외로운 곳에서 
잠 못 이루며 나지막하게라도 하나님을 부르거든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옵소서. 

야곱이 광야에서 하나님이 자기 아비 이삭의 하나님만 아니라 
온세상의 하나님인 것을 깨달았듯이, 
저의 아들이 병영생활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고 
이 시대의 또다른 벧엘을 경험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