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이나 서양이나 전래동화에 가끔 용이 나온다.
동양에서는 상서로운 존재로 생각하지만, 서양에서는 물리쳐야 할 존재이다.
서양에선 용과 함께 당연히 그 용을 잡는 기사가 나온다.
그 기사의 이름을 아는가?
동유럽에서는 ‘게오르규(Gheorghiu)’, 서유럽에서는 ‘그레고리(Gregory)’, 영어권에서는 ‘조지(George)’이다.
용을 잡는 기사의 이름이 이렇게 알려진 것에는 교회사적 배경이 있다.
서기 313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었다.
더이상 기독교인이란 이유로 핍박 받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가정에서 또는 카타콤에서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던 기독교인들이 양지로 나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3백년이 지나는 동안 넓디 넓은 로마 제국에서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비밀리에 신앙을 지키다 보니 서로 무엇을 믿는지 점검하지 못한 것이었다.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 ‘아리우스’라는 사람을 중심으로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단이 강한 세력을 펼치고 있었다.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아타나시우스’를 중심으로 ‘니케아 종교회의(325)’ 때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그러나 이단의 가르침은 아리우스가 거점으로 삼았던 동로마 지역을 중심으로 계속 심해졌다.
이 때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에 있던 두 사람이 아리우스 이단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교회를 지키려고 애썼다.
4세기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로 알려진 사람들이다.
이들이 끝까지 ‘니케아 신경’으로 정리된 ‘삼위일체’ 신앙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교회를 이단으로부터 지켜내고,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신앙적으로 하나가 되도록 했다.
당시 이 사람들은 카파도키아 광야에서 수도원 운동을 했는데, 그 후진들이 암벽 안에 성당이나 기도처를 만들고 벽화로 두 그레고리가 이단과 싸우는 모습을 그렸다.
그 때 이단을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고 교회를 해하는 사탄, 곧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옛 뱀, 용으로 표현했다.
2019년 터키 성경지리 답사 중 카파도키아 지역을 방문했을 때 여러 곳에 비슷하게 그려진 벽화를 보며 가이드 하규하 선교사님으로부터 이런 설명을 들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기념품을 하나 샀다.
사진에 흐릿하지만 말 아래 보이는 뱀은 교회를 해하는 사탄이며 당시로는 이단을 의미한다.
말을 타고 옛 뱀 곧 용을 죽이는 두 사람이 바로 닛사의 그레고리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이다.
1000년 넘게 지나면서 그림의 배경은 없어지고 용 잡는 기사 이미지만 남은 것이다.
4세기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다 용납하지 않았다.
신앙의 본질을 왜곡하는 무리들에 대해선 교회의 순결을 위해 강하게 배격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교회 정치는 진리가 아니므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으로 나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믿는가’를 왜곡하는 건 이단이지 교회가 아니다.
현실은 어떤가?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 ‘정말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가르치기 보다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으로 사람을 모을 수만 있다면 이단적 가르침이든 삼단적 방법이든 상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는데도 교세가 크다는 이유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요즘 교단들의 행태를 보면 두 분의 그레고리님이 하늘에서 혀를 차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