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14
오늘 점심약속이 있어서 나가려고 하는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목사님, 잘 지내세요?”
2년전 안양시 취약계층 자녀들을 위한 드림스타트 사업중 기존예산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을 돕는 차원에서 두 가정의 가족여행을 도운 적이 있다.
취약계층의 아이들의 소원중 하나가 가족여행인데, 드림스타트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라 가족여행은 사업대상이 아니고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시행되지 못했다.
먼저 담당공무원과 부모를 만나서 안면을 익히고 전도행위를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했다.
나들이에는 차량과 기사가 필요했고, 아이들과 놀아줄 도우미가 필요했다.
도우미는 청년들이 하면 좋겠지만, 문제는 부모들이 썰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싶었다.
이것이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부모들과 지속적으로 소통을 하려면 다른 교역자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인 내가 직접 운전을 하고 부모들과 대화하는 것이 좋겠다 판단했다.
동성의 청년들에게 내용을 설명하고 도우미가 될 것을 요청했고, 나들이를 가는 날 처음 만나면 혹시 아이들이 어색할까봐 미리 만나서 간식을 먹기도 했다.
나는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위해 혹시 경사로가 없는지,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좋을지 미리 답사를 했다.
그렇게 해서 한 가정은 남이섬으로, 한 가정은 에버랜드로 일일가족여행을 다녀왔는데, 에버랜드로 다녀온 가정의 어머니의 전화였다.
그 때 중학생 아들 한 명과 초등학교 저학년 아들 한 명이 청년 형 두 명과 함께 짜릿한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나는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는 그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놀이동산에서 가족이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많이 찍어주려고 했다.
사진이 있어야 다시 즐거운 추억에 빠질 수 있으니까.
그 때 어머니는 사정이 있어 점심식사후 얼마 되지 않아 먼저 가셨다.
우리는 야간퍼레이드까지 다 보고 폐장 무렵 빠져나왔다.
나는 아침부터 운전하고 하루종일 놀이동산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밤늦게 정체되는 도로에서 운전하며 가려니 무척 피곤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 사내아이는 아침에 갈 때와는 다르게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많이 친해지기도 하고 마음껏 놀기도 했나 보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중학생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목사님, 저도 교회 가도 돼요?”
이 질문을 듣는데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나왔다.
교회 이야기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같이 시간을 보내고 놀아주기만 했다.
마지막 순간에 아이가 그 말을 하는데, 그 말은 단순히 보답으로 기독교신앙을 갖겠다는 말이 아니라 사랑이 고프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이 아이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게 뭔지 잘 모르겠고, 해줄 능력도 별로 없다.
“그럼, 언제든지 와도 돼지.”
적극적으로 무엇을 해주겠다가 아니라 문을 열어주겠다는 소극적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아이는 밝게 웃었다.
그리고 그 주일에 아이는 중요한 약속을 미루고 교회에 나왔다.
그 후로 간간이 아이의 일로 그 어머니와 연락을 주고 받았다.
오늘은 내가 사임한 후로 두 번째 연락이 온 것이다.
첫 번째는 이웃을 통해 내 사임 소식을 듣고 놀라서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한 전화였다.
오늘은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아이가 내가 없다는 핑계로 교회를 다니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요즘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을 만나서 인생이야기를 하면서 혹시 성경이나 기독교에 대해 오해하는 것이 있으면 바르게 설명하고, 교회가 잘못하고 있는 부분은 솔직히 시인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실은 자기도 모태신앙인데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며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가 모태신앙인만큼 출석은 기본이고 교회 일을 열심히 하면서 기독교신앙을 받아들이려 애를 썼는데 잘 안되었고,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누구도 자기에게 구체적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질문을 허용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믿음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너무 힘들고 견딜 수 없어서 교회를 떠났다고 했다.
누가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솔직하게 아는 만큼이라도 자세히 알아듣도록 설명을 해줬으면 자신은 교회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목사님이 정말 중요한 일을 하시는 것 같다며 응원한다고 했다.
나는 솔직히 내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모르겠다.
청년 때라도 불안할텐데 처자식까지 있으니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널을 뛴다.
명함에 적을 만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히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만남을 위해 기도하고, 만남 후에도 기도한다.
그러나 생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내가 이래도 되나, 내가 언제까지 이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걱정해 주시는 말씀도 듣게 된다.
그런 날이면 마음이 많이 무겁다.
기도원에라도 가고, 금식기도라도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이 전화가 내게는 너무도 큰 칭찬과 격려로 들렸다.
다시 보이는 데까지 그 길을 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