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굴같은 바닷가

얼마전 가끔 통화하는 목회자와 근황을 나눴다.
최근 내가 모임장소를 얻게 된 과정을 듣고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줬다.

뭔가 통하는 것이 있어 나는 내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내가 자주 바닷가를 걷기도 하고 바닷가의 사진을 올리기도 하니까 사정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마음 즐겁고 행복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소위 탄탄한 길을 거부하고 보이지 않는 길로 들어섰기에 막막함과 답답함은 내가 감당할 일상이지만 그만큼 자주 바깥에서 넓디 넓고 변함없는 바다를 보고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쐬야만 견딜 수가 있었다고.
SNS에 “보이는 곳까지 간다”고 올리는 것은 나에게는 뭐가 보이니까 잘 가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 다음은 역시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분은 대뜸 요즘 묵상한다는 다니엘서 6장 이야기를 했다.
다니엘이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이 정한 다른 신에게 기도하지 말라는 법을 어겨 사자굴에 던져질 때 내용이었다.
다니엘도 사람이었으니까 사자굴이 본능적으로 무서웠을텐데 성경에는 그런 묘사가 전혀 없다고.
짧은 시간 사자가 덮치는 것을 피하는 것도 아니고 하룻밤을 그곳에서 지내면 밤새도록 불안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런 내용은 없다고.
밤새 하나님이 다니엘을 사자들로부터 지켜주셨으면서도 마치 다니엘이 온전한 믿음으로 두려움도 없이 밤을 샌 것처럼 보이게 하셔서 다니엘의 마음도 지켜주셨다고.

“그런데 목사님에게는 바닷가가 사자굴이었군요”라는 그 한 마디가 내 마음을 크게 울렸다.
내가 바닷가를 걸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못하고 얼마나 무겁고 힘든 마음으로 바닷가를 걸었을지 이해하는 것 같은 첫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가려 하지 않는 길을 가는 나를 대단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을 높이는 고백이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누군가는 바로 어느 누구에 비할 수 없는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이었을 것이라고.
지쳐 있고 의심하여 흔들리는 믿음의 자녀를 꾸짖지 않으시며 쉼 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격려하며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일하심이었다고.
오늘날도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의 기적을 신실하게 행하시는 주님은 지금도 앞으로도 살아계시다고.
오랜만에 말씀이 내 가슴을 쓰다듬어주는 느낌이었다.

이번 주간에도 나는 바닷가를 몇 번 걸을 것이다.
그곳은 내게 외롭고 괴로운 광야이며, 또한 하나님의 일하심과 나를 위로하심을 발견하는 사자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