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대청소를 하면서 어제 좌식 의자를 아파트 앞에 내놨다.
누구나 필요하면 가져가도록 그렇게 했다가 하루가 지나도 없어지지 않으면 폐기물 처리 스티커 비용을 경비실에 낸다.
나도 그렇지만 요즘은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이 많은지 바닥에 앉는 걸 좋아하지 않는가 보다.
예전에 좌식 테이블을 놨던 식당들도 하나둘씩 의자를 놓는 테이블로 바꾸고 있다.
경비실에 가서 “의자 처리비용 내러 왔습니다”라고 했다.
창문을 여는데 좀 무뚝뚝한 아저씨였다.
대뜸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그러셨다.
오늘이 2021년의 마지막 날이기는 하지만 영문을 몰라 “예?”라고 했다.
손가락으로 경비실에 새롭게 붙여진 유명경비업체 간판을 가리키며 “아파트에서 제가 속한 용역업체하고 계약을 만료하고 여기하고 새로 하는 모양입니다. 그동안 고마왔습니다”라고 했다.
“아니, 그렇다고 그동안 일하신 분들을 갑자기 나가라고 그러면 어떡합니까? 주민하고 친하기도 하고 익숙하게 하신 일들도 있는데. 그동안 일하시는 것 고려도 하면 좋을텐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일할 수 있는데. 이 동에서는 저하고 청소하는 아줌마하고 같이 나갑니다”
“청소하시는 분은 오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요?”
“예, 나이가 70이 돼서 그런 모양입니다”
“같이 일하시던 분은요?”
“그 사람은 앞 초소로 가게 됐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저보다 나이가 어린 모양이더군요”
“아쉽네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나는 경비 아저씨를 향해 창문 너머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예, 안녕히 가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경비 아저씨도 열린 창문 사이로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주름잡히고 건조한 손이지만 따뜻한 손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오늘이 그냥 한 해의 마지막 날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
그냥 ‘이렇게 한 해가 또 가는구나’ 정도로 오늘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 보내기만 해도 서운한 한 해의 마지막 날인데, 정말 복잡한 심경으로 오늘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인생을 배운다.
12월 31일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
그냥 밝은 얼굴로 “Happy new year!”이라고 인사를 할 수 없는 분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
이런 인생에 대한 이해도 없이 절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주섬주섬 오십 몇 살이나 먹은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살을 먹는다는 것이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긴 처음이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하루하루를 후회없이 따뜻하게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