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서 사역하는 이승훈 선교사님이 잠시 귀국해서 낮은울타리를 방문하셨다.
파송교회 담임목사였던 내가 갑자기 사임하고 부산에서 비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도시선교를 한다고 하니 어르신이 계시는 나주를 방문하는 길에 일부러 부산까지 찾아 주셨다.
이 선교사님은 나이는 나보다 4년 위지만 합동신학대학원은 한 해 뒤에 입학했다.
신학교 가까운 재개발 직전의 낡은 아파트 단지에 같이 살면서 남서울평촌교회 교육전도사로서 같이 출퇴근을 했다.
주일 아침 일찍 남자들이 먼저 이승훈 선교사님의 자주색 투톤의 티코를 타고 출근하면, 나중에 아내들이 돌 전후 아기들을 데리고 우리집 흰색 티코를 타고 예배당에 왔다.
그렇게 친해져 자녀들을 포함해 지금까지 교제를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된 2002년 봄이 이르기 전 이승훈, 장혜영 선교사님 가정은 남서울평촌교회 파송과 HOPE 선교회 소속으로 몽골에 파송되었다.
처음엔 IVF를 몽골에 접목한 FCS 대학생 사역을 했고, 리더십이 세워진 후 기독교 서점을 포함한 기독교 백화점 사업을 했고, 몽골 장로회신학교 사역, 지금은 울란바타르 대학의 교수로 사역을 하고 있다.
물론 계속 현지 교회 사역과 신학교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아내 장 선교사님은 처음엔 어린 자녀들을 키우다가 나중에 선교사자녀학교에서 교사로서 사역하며 보기 드문 10년 근속을 했다.
나중에 내가 파송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어 조금 다른 입장에서 이 선교사님 가정의 사역 내용을 보더라도 참 한결같고, 성실하고, 탁월하다.
올해로 이 선교사님 가정이 선교 사역 20주년을 맞았다.
잠시 귀국하여 파송 교회인 남서울평촌교회에서 설교하고 조촐한 기념의 시간을 가지게 됐다.
나는 선교목사님으로부터 2대 담임목사이며 오랜 시간 이 선교사님과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으로서 축하영상을 부탁받았다.
축하영상은 이 선교사님이 설교하는 남서울평촌교회 주일 예배 때 깜짝 공개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천편일률적인 축하영상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이 선교사님과의 관계와 그동안의 사역에 대한 나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
1분 30초 영상을 부탁받았으나 제작하니 2분 30초가 되었다.
영상을 전달하며 의도를 설명하며 좀 길지만 양해해 달라고 했다.
아래는 그 영상의 내용이다.
남서울평촌교회 성도 여러분 안녕하세요. 부산에서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낮은울타리의 강신욱입니다.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시는 남촌 성도님들께 오랜만에 인사 드리게 되어 감사합니다. 이다윗 장한나, 이승훈 장혜영 선교사님의 선교사역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이다윗 장한나 선교사님 가정과의 몇 가지 추억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수원에서 합신을 다니던 교육전도사 시절 이 선교사님과 함께 티코를 타고 교회에 왔던 일, 다섯 살 선호를 걸리고 돌도 되지 않은 유진이를 안고 출국장으로 들어가시던 모습에 울컥했던 일, 가난한 몽골 대학생들과 함께 하느라 밥을 굶어가며 성경공부를 시켰다는 걸 알고 짠했던 일, 그 학생들을 간사로 세워서 그렇게 기뻐하셨던 일, 이 선교사님이 교통사고를 당해 겨울에 몽골을 방문했을 때 몽골의 겨울이 춥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 치 앞을 볼 수 없고 숨을 쉴 수 없는 독한 매연에 놀라 1년에 이런 겨울을 몇 달씩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 미안하고 마음 아팠던 일, 한국의 신앙서적을 몽골어로 번역해서 책을 출판하고 그 책이 진열된 책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셨던 일, 비자를 얻으려고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수석졸업을 하고 교수가 된 일, 장 선교사님은 1년을 채우기도 어려운 선교사 자녀학교에서 10년 동안 가르치시고 이제 이 선교사님과 함께 대학에서 가르치시게 된 일까지. 그리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청년으로 잘 자라준 선호와 유진이. 선교사님과 가정은 저의 자랑이고 사랑하는 남촌의 자랑이며 하나님의 자랑입니다. 이미 성실함과 탁월함으로 몽골 선교의 모범이 되신 선교사님의 이후 사역과 고백을 기대하며 다시 한번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