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눈물이 나오지?”

오늘 오전 비신자 여성 성경공부가 있었다.
모임을 마치자 비신자를 소개한 분이 내게 물었다.
“목사님, 혹시 교회 개척 신청하는 건 어떻게 되었나요?”
“아, 예, 지난 1월 13일 노회에서 허락되었습니다”
“아, 잘 되었네요. 그럼 언제부터 주일 예배를 시작하나요?”
“2월까지는 좀 춥기도 하고 아이들 방학도 있고 해서 3월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장소는요?”
“송정과 기장 사이에 있는 예배당을 오후에 빌려서 할 예정입니다”
“시간은요?”
“그쪽 교회 오후 순서가 다 마친 오후 4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 그렇군요”

“그런데 처음엔 예배가 아니라 함께 해주시는 분들과 축하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사실 다들 예배가 익숙한 분들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불편하실 것 같아서 가족들도 함께 와서 같이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만들려고요”
“오, 그러면 좋겠네요”
“예, 그 때 가족들도 같이 오세요”
“예”

“처음 비신자 중심의 교회를 한다고 했을 때 노회에서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생소한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지난 1년간 제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 보면서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생긴 겁니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은 모르시니까 노회에서 앞에 나가 설명을 했습니다. 저는 비신자를 지향하는 교회라 조금 다른 형식을 취하더라도 이해해 주십사 부탁을 드렸습니다. 다행히도 반대의견없이 통과되었습니다. 안도와 동시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구나’라는 부담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셨겠어요. 목사님이 하나하나 다 하셔야 되잖아요. 전에는 지시만 하시다가”
“맞습니다. 낮은울타리에 와서도 아침에 블라인드 걷고, 보일러 조종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는 일들을 제가 다 해야 하니까요?”
“부산 내려온 것 좀 후회하지 않으세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가끔씩 하죠 ㅎㅎ. 저도 사람인데. 괜히 왔나? 이런 ㅎㅎ”
“그래서 이렇게 저희도 만나시잖아요”
“그럼요. 이 모임이 얼마나 소중한데”

비신자 한 분에게 물었다.
“부산 출신이세요?”
“예”
“저는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수도권에서 20년을 살다 내려오니까 부산이 너무 예전같지 않은 거예요. 저는 부산대학교를 나왔는데 부산대학교를 보는 시선도 예전같지 않고. 선배로서 후배들이 고생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서 저는 부산을 축복하는 기도를 합니다”
“예?”
“예전에 제가 안양에 있을 때 솔직히 저도 서울로 진출하고 싶었지요. 그런데 깨닫게 되었어요. 왜 하나님이 서울로 가고 싶은 나를 지리 시간에 서울의 위성도시, 베드타운으로만 배운 안양에 보내셨는지. 안양을 위해 기도하라고. 잠언 11장 11절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앱으로 잠언 11장 11절을 찾아 보였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성읍은 도시이고, 성경에서 정직한 자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진실을 고백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도의 축복으로 도시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안양의 청년대학생들과 안양을 위해서 기도했죠. 안양권에 8개의 대학이 있는데 솔직히 선망하는 대학은 아니죠. 그렇다고 저주스럽게 여길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을 축복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부산을 축복하고 있어요. 부산의 젊은이들이 떠나고 인구가 줄고 있잖아요. 그래서 부산의 산업이 일어나고 젊은이들이 남고 싶은 도시가 되게 해달라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여러분들 오시기 전에 그렇게 기도했어요”

“기도할 때 먼저 하는 기도가 있어요. 이 장소를 도배하고 저녁 무렵 혼자 베란다 나가는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이곳을 위해 기도하는데 문득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머리 한 편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갑자기 그 이야기를 듣던 비신자 한 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쳐다 보니 “내가 왜 눈물이 나오지?”하며 곽티슈에서 화장지를 뽑아 얼굴에 갖다 댔다.
“이 말씀을 아세요?”
“아니요”
“그런데 어떻게?”
“모르겠어요. 갑자기 가슴이 확 아려오네요”
“예, 제가 부산을 위해 기도할 때 그렇습니다.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립니다. 큰 예배당을 짓고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일이 아닐 것 같은데, 뭔지 모르지만 매일 그 말씀을 암송하고 기도합니다”

나를 뭉클하게 했던 그 말씀, 사명자라 불리는 목사나 뭉클하게 되는 줄 알았던 그 말씀이 비신자도 뭉클하게 만들 줄 전혀 몰랐다.
나는 순종할 뿐이고, 하나님이 일하신다.
나는 전심과 진심으로 행하고,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이신다.
나는 기도할 때 가슴이 아려 하나님이 이런 마음이시구나 했더니, 비신자 중에 내가 기도할 때 마음을 공감하는 사람이 생겼다.

비신자를 소개한 분이 말했다.
“이렇게 저희들을 만나셨잖아요. 이게 얼마나 귀한데요”
눈물을 흘린 분도 거들었다.
“저도 늘 감사히 생각하고 있어요”
나도 화답했다.
“그럼요. 이 모임이 얼마나 귀한데요. 저도 여러분들 만난 것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