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성경공부(15) – 전도서 4:7-16

“8절에 ‘어떤 사람이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다고 했는데, 부양가족이 없다는 의미죠. 그런데 혼자 먹고 살 만큼만 수고하지 않고 끊임없이 수고합니다. 왜 그럴까요?”
“돈을 더 벌려고 그러겠죠?’
“자기가 다 쓰지도 못할텐데 왜 그러는 걸까요?”
“글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가진 다음에도 더 수고하면서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솔로몬은 자기가 가진 부요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더 가지고 더 누리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큰 착각입니다. 결핍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그 결핍의 대상이 무엇인지 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겁니다. 계속 그릇된 가치관, 자기 욕심, 잘못된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이건 마치 갈증을 느낀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거죠. 만족이 없습니다. 솔로몬은 그것이 무익한 수고이며, 불행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9절부터 12절까지 반복하는 표현 찾아 보시겠어요?”
“여기는 ‘두 사람’이 자주 나오네요”
“예, 매 절마다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이 낫다는 내용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놓치지 말고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뭉치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더 많은 권력과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게 아닙니다.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다시 보십시오”
“따뜻함 그런 거네요”
“9절엔 ‘좋음’, 10절엔 ‘붙들어 일으킴’, 11절엔 ‘따뜻함’, 12절엔 ‘함께 맞섬’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쟁취해서 얻으려는 개념들이 아니지요.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정작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삶에 행복과 만족을 얻으려면 필요한 것들은 바로 이런 것들입니다. 혼자만의 수고로는 얻을 수 없고 공동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솔로몬은 인간의 행복에 공동체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3절과 14절은 실제 이야기가 아니라 솔로몬이 예를 들기 위해 짧은 소설을 하나 썼다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가난하게 태어난 젊은이가 어쩌다가 감옥까지 갔는데 거기서 나와 왕까지 되었다는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환호하고 자기 인생에도 이런 일이 생겼으면 하고 기대하는 인생역전 드라마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바로 15절과 16절은 그렇게 왕이 된 젊은이를 사람들이 좋아했지만 그 후 시대의 사람들은 그 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인생재역전이 된 거죠. 다시 몰락한 겁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고 인생역전 드라마를 쓴 들 다음 시대까지 이어지지도 못하니 헛될 뿐이죠. 극적인 인생을 살지만 그 인생에 평온함이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 27절과 28절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한번 읽어 주시겠어요?”

요한복음 14:27,28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예수님은 평안을 주시는데,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평안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는 완전한 개인적인 자유와 많은 재물과 막강한 권력을 얻으면 평안할 것이라 속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솔로몬이 증명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은 공동체와 소박함과 적당한 매임이 있어야 참 행복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짐을 벗겨 주시고 대신 멍에를 메게 하신다고 말씀하신 것 기억하세요?”

마태복음 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예, 저는 이 말씀이 늘 마음에 걸리고 의문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짐을 풀어 주셨으면 풀어 주신 걸로 끝나시면 좋은데, 왜 다른 멍에를 메게 하셔서 인생을 여전히 힘들게 하실까 하는 겁니다”
“그렇게 보이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멍에를 잘 알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멍에는 그냥 또다른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멍에는 소 두 마리가 짝이 되어 쟁기질을 할 수 있도록 구부러진 막대입니다. 예수님이 ‘멍에’를 향해 뭐라고 하셨나요?”
“‘내 멍에’라고 하셨네요”
“예수님이 또다른 짐을 지우신 게 아니라 예수님의 옆 자리에 우리를 초대하신 겁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가면 망할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존재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늘 우리 곁에 함께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멍에는 둘의 합이 참 중요한데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맞추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께 맞춰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게 배우라’고 하셨지요. 이건 복이지 저주가 아닙니다”
“제가 오해하고 있었네요. 전혀 그런 뜻이 아닌 거네요”
“예,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대표적인 멍에가 무엇이냐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늘 편하고 좋지만은 않아요. 내가 교회에 맞춰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교회 덕분에 좋음, 따뜻함, 일으켜 세워짐, 함께 맞섬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평안함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안전한 평안함을 누리게 됩니다. 땅에서는 교회가 불완전하니까 우리가 경험하는 평안도 불완전하고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완전하고 아쉬움이 없는 평안함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 멍에와 교회에 대한 오해가 풀리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