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 9장 12절부터 장을 넘어 10장 1절까지 한 절씩 읽었다.
성경의 저자들은 처음부터 장절을 구분하여 기록되지 않았다.
장과 절도 한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장은 11세기에 만들어졌고, 절은 1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절이 나누어진 성경으로 처음 출간된 것은 16세기 나온 제네바 성경이다.
성경을 읽을 때나 특히 공부할 때 반드시 장별로 끊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다.
“11절에 지혜자, 명철자, 지식인 등 소위 똑똑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전혀 알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뭘까요?”
“미래의 일요”
“예, 맞습니다. 12절에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자기의 시기’란 ‘죽을 날’을 말합니다. 인생에 닥칠 재앙의 날은 그들도 전혀 예측하지 못하게 ‘홀연히’ 임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해도 자기의 미래나 어떤 일로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는 거죠. 자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구원자요”
“맞습니다. 이제 전도서의 큰 흐름을 제대로 보시는 겁니다. 모든 인생에게는 구원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도서의 일관된 메시지입니다”
“13절에 ‘해 아래에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게 무슨 의미라고 했지요?”
“솔로몬이 또 무엇 하나를 깨달았다는 것이겠지요”
“맞습니다. 이제 척척이십니다ㅎㅎ. 13절부터 17절까지 반복되는 단어를 찾아 보십시오”
“지혜와 가난이요”
“잘 찾으셨습니다. ‘지혜’가 4회 나오고 ‘가난’이 3회 나옵니다. 성읍이 군대의 공격을 받고 위기를 맞았을 때 지혜자가 지혜로 그 성읍을 구원했는데, 그 지혜자가 가난하니까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가난 때문에, 조건 때문에 지혜가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목사가 하면 그러려니 하고 듣지만 TV에 나온 박사의 말을 더 믿습니다. 똑같은 목사라도 시골 교회나 개척 교회 목사의 말은 싱겁게 듣고, 대형 교회 목사의 말이나 기독교 방송에 나오는 목사의 말은 진리처럼 듣습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가장 우스운 일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로마 식민지인 유대 땅에서도 변방인 갈릴리의 가난한 나사렛 출신이란 것 때문에 평생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서도 멸시를 받으신 겁니다. 만약 예수님이 로마 황실의 자손으로 태어났다면 그들이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요?”
“막 대하지는 못했겠지요”
“진리냐 비진리냐를 분별하는 게 아니라 형편과 조건을 먼저 보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것 같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지요”
“전도자는 16, 17, 18절에서 분명 지혜가 힘보다 낫고, 지혜가 우매한 호령보다 낫고, 지혜가 무기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죄인 한 사람이 많은 선을 무너지게도 하는 것이 인생사라고 말합니다. 이 내용이 10장 1절에도 반복되기 때문에 10장 1절까지 읽었습니다. 죽은 파리 한 마리가 ‘향기름’에 악취가 나게 하고 못쓰게 하듯 우매한 한 언행이 지혜와 존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 인생사입니다. 그럼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떻겠습니까?”
“답답하고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전도자는 지금 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곧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질 참 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우매함이 참 지혜인 복음을 거부합니다. 그것이 별 것 아닌 것 같고, 자기 소신 대로 행하는 것 같지만, 결국 자기 영혼을 부패하게 하고 사회를 부패하게 합니다. 전도자는 전도서 곳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권하고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