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군 방위로 군 복무를 했다.
처음엔 악몽같은 세월이 빨리 지나가기만 바랐다.
그러나 악몽같은 세월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니 이것도 덜어낼 수 없는 내 인생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허투루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난 행정계에 근무했는데 직장인 것처럼 열심히 일했다.
어느 날은 퇴근 후 학원에 갔다가 다시 부대로 들어가 서류 작업을 하기도 했다.
마침 부대 내 관사에 있던 중사가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들어왔다가 내가 일하는 걸 보고 놀란 적도 있다.
군대에선 웬만하면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해야 한다면 미루거나 다른 사람에게 시키려고 하고, 얼른 제대하기만을 바란다.
그런데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야간 업무까지 하니 군대가 체질인 모양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한번은 둘만 있을 때 중사가 내게 부대 일은 이렇게 반복되니까 아주 단순하다며 소위 말뚝 박기를 권했다.
내용상 너무 어이없는 제안이었지만 나를 좋게 봤기에 그런 말을 해준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제안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되는 중요한 제안이었다.
제안을 듣는 순간 ‘이걸 매년 은퇴할 때까지 반복한다고? 난 못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됐다.
뻔하게 반복되는 일이나 생활을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상상만 해도 그런 삶이 지겹고 힘들었다.
그래서 돌아보면 나는 목사로서 똑같은 성경공부나 설교라 할지라도 뭔가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인생은 뻔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잠에서 깨고, 먹고, 일하고, 먹고, 만나고, 또 먹고, 피곤해서 잔다.
이 반복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아야 건강한 일상이 유지된다.
구약 성경 전도서에는 이것이 정해진 인간의 삶이라고 말한다.
나같은 성향의 사람에겐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상 이치이다.
그런 다람쥐 쳇바퀴같은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지금도 나는 하루하루가 새롭고 역동적이길 원한다.
그러나 이젠 이치를 거스르는 시도를 할 힘이 없다.
나도 어느덧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고, 먹고, 다시 자고 있다.
나도 모르게 몸이 순응했다.
나이가 들어 겸손해진 걸까, 몸이 더 순종적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