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이라 바빠서요

“월말이라 바빠서요”
예전에 성경공부나 봉사활동에 빠지시는 분들로부터 가끔 듣던 소리이다.
물론 나는 “예,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잘 마무리하십시오”라고 답했다.
하지만 속으론 ‘평소 미리 정리해 놓으면 월말이라고 이렇게 바쁘진 않을텐데. 매달 반복하면서 매달 그 일에 시달리다니…’라며 좀 안타깝고 아쉽게 여겼다.

그때 나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중형교회의 담임으로서 월말이라고 딱히 정리할 일이 따로 없었다.
게다가 난 예민하고 생각이 많아 하나의 일을 처리하는 데에도 신경을 집중한다.
그래서 일에 대해서는 미리 예상하고 준비하는 스타일이라 정말 갑작스런 외부적 요인이 아니고서는 일이 몰리지 않게 대처한다.
그러니 월말이라 특별히 바쁜 이유를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다.
실은 늘 빈틈없이 챙기던 은행 지점장 출신 행정실장님이나 사무간사가 수고하고, 월말에는 재정 담당 장로님이나 집사님들이 엄청 수고를 해주셨을 게다.
내가 몰랐던 것이다.
아, 이 공감능력 떨어지는 인간을 어이할지.

그러나 나 혼자 모든 걸 챙겨야 하는 지금은 십분 이해한다.
몇 장 되지도 않는 영수증을 챙기고, 분류하고, 번호를 매기고,
항목에 맞춰 지출결의서를 쓰고,
금전출납부와 통장이 맞는지 살핀다.
지난 20년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반나절을 그렇게 보내면 진이 빠진다.

하물며 회사 일은 오죽하랴.
월말이라 바쁜 중에도 어떻게든 교회 일에 우선순위를 두려고 애썼던 많은 성도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 같으면 못할 일을 그분들은 매월 해내며 사는 것이다.
이제야 참 귀하고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

그건 그거고,
나도 이젠 월말이면 바쁘니 월말은 피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