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디자인을 공부하는 둘째가 다음 주간부터 개강이다.
수도권 친척 집에서 다니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거리가 너무 멀고, 게다가 들고 다녀야 할 준비물도 많아 학교 가까이 방을 구해주기로 했다.
내심 몇 가지가 걱정되었다.
첫째는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하니 세도 많이 올랐을 것 같고, 둘째는 한 학기만 하고 입영을 해야 하니 집주인이 좋아할 만한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는 부동산을 검색해서 이리저리 찾아보더니, 일단은 고시텔을 먼저 찾고 안되면 원룸을 구해보자고 했다.
나는 기도했다.
“하나님,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하나님께 이삭의 신부감을 구했을 때 마침 리브가를 만나서 알아봤던 것처럼 둘째가 있을 곳을 금방 만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자기 방에 있는 둘째에게 가서 말했다.
“아빠가 사임할 때 정말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는데, 하나님이 신명기 1장의 말씀처럼 인도해 주셨어. 우리집이 서울로 이사할 때도 한 집 보고 그냥 계약하고 이사했거든. 네가 있을 방도 하나님이 그렇게 인도해 주실거야”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신명기 1:33
오늘 둘째 방을 구하기 위해 짐을 싸들고 올라왔다.
학교 근처로 가서 고시텔을 찾아 보자 마음 먹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금요일 퇴근시간이라 교통 정체가 심했다.
‘하나님, 우리 둘째가 기거할 방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속으로 기도했지만, 정말 이 일은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것과 같은 일이다.
전 인구의 절반이 서울과 수도권을 생활배경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먼저 앱 지도에 학교 근처가 나오게 하고 ‘고시텔’을 입력했다.
한 번에 약 열 군데가 보였다.
‘이 밤에 이 복잡한 거리에서 열 군데 이상을 돌아다녀야 하나?’ 생각하니 암담했다.
‘주님, 한 집 가서 바로 정할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금요일 저녁이라 강남의 골목이 사람들로 빽빽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실종된 것처럼 보였다.
자동차로 일방통행 골목길로 다니며 앱에 표시된 고시텔을 찾아 외양을 확인했다.
1층에는 보통 식당, 술집이 있었고, 좋아야 편의점이었다.
지금이야 밤 9시면 영업이 중단되지만, 그렇지 않을 땐 새벽녘까지 떠들고 담배 피고 술 주정하고, 싸우는 소리로 시끄러울 것 같았다.
이렇게 돌아봐서는 아무 것도 안될 것 같아 일단 차를 어디다 세워야겠는데, 주차장이 보이질 않아 어느 식당 주차장이라도 대고 먼저 밥을 먹을까 생각했다.
어느 고시텔과 부동산 사무소 사이에 차를 잠시 대고 이리저리 살펴 보는데, 아주 작은 사설주차장이 보였다.
마침 승용차 한 대가 차를 빼고 있어 눈에 띄었다.
주차를 하고 길거리에서 눈에 보이는 고시텔을 보니 안을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되는 스타일이었다.
아들을 저런 곳에 하루라도 살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어떡하지?’하며 외진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좁고 인적이 드문 골목에 낡은 고시텔 간판이 보였다.
그런데 건물은 화강암 외장의 작고 예쁜 빌라같은 모양이었다.
건물을 보니 간판에 있는 그 이름이 있었다.
‘이런 골목에 이런 고시텔이 있다니’
내부도 보고 싶었다.
연락처로 전화를 하니 담당자가 퇴근하고 오랜만에 지인과 식사하러 나갔단다.
그러면 내일 오전에 오겠다고 했다가 토요일 강남쪽에 결혼 하객들로 교통 정체가 심할 것 같아 그냥 기다리겠다고 했다.
두 시간 걸린다고 하니 우리도 그냥 밥이나 먹으며 기다리자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담당자가 지금 오겠다고 했다.
순간 엘리에셀에게도 물을 주고 낙타에게도 물을 주겠다는 리브가의 느낌이 나는 듯했다.
담당자는 50대 후반의 남자이다.
방을 보니 고시텔 치고는 괜찮았고, 밥과 김치를 준다니 더 괜찮았고, 담당자가 까탈스럽지 않고 성의있게 하는 것 같아서 더 괜찮았다.
방 두 개가 있었는데 오늘 하나 나가고 딱 하나가 남았다고 한다.
나도, 아내도, 둘째도 다 마음에 들어했다.
바로 계약서를 쓰고 월세를 입금했다.
열쇠를 받아 들고, 짐을 집어 넣고 나왔다.
“아빠가 하나님이 먼저 정하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했지?”
여전히 정체가 심한 도로의 차안에서 우리 가족은 우리가 되새겼던 하나님 말씀과 우리가 했던 기도를 떠올리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어쩜 걸어서 5분 거리에 방 하나를 보고 그 방이 마음에 들어 그 방을 계약할 수 있게 하셨나’를 생각할 때 기적과도 같았다.
기도를 들으시고 신실하게 인도하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친척집에 옮겨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중, 둘째와 같이 학교 다니는 동기도 오늘 방을 구했다고 해서 물어보니 바로 같은 고시텔이었다.
오늘 오후에 나갔다는 방에 들어올 사람이 바로 둘째의 동기였던 것이다.
소~~름!!
둘째도 좋아서 웃는 얼굴 반, 놀란 얼굴 반이다.
혼자 밥을 먹는 것이 영 마음에 걸렸는데, 같은 곳에 친한 동기가 살게 되어 같이 다니고 밥도 같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미처 구하지 않은 것도 넘치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액센트에 가족 모두 “이야, 이럴수가”라며 놀랐다.
아비로서 더 좋은 조건의 더 좋은 방을 구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떻게 그 방을 얻게 하시는지 우리 가족이 함께 경험했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방이며, 인도해 주신 방이다.
그렇다면 가장 적당한 방인 것이다.
둘째가 그 방에서 하나님의 임재도 누리면서 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