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존재 증명

한 마디로 ‘못한다’.
‘하나님 존재 증명’이라고 하든 ‘신 존재 증명’이라고 하든 불가능한 일이다.
목사가 ‘하나님 존재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사실이다.

보통 기독교인이 성경의 말씀이나 성경에 나오는 사건을 가지고 하나님이 계심을 증명하려 한다.
성경을 믿을 수 없어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달라고 하는데 그 증거로 성경을 들이대는 것은 순환논법의 오류이다.
한 마디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기독교인들, 심지어 하나님의 실재를 증거하는 목사 중에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나 누구의 증명으로 이해되고 설득되어 믿게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자신도 그렇게 믿지 않았으면서, 왜 그렇게 증명하려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초월적인 존재이다.
수학공식이나 과학실험으로 단순히 증명될 수 없다.
수학공식이나 과학실험은 인간도, 짐승도 다 드러내지 못한다.
아주 제한적인 부분만 나타낼 뿐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그런 식으로 인식하고 싶고, 그런 식으로 증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모순이다.

설령 아주 탁월한 방법으로 증명했다고 해도, 그것은 주민등록등본을 떼는 정도일 것이다.
예를 들어, 주민센터에서 등본을 발급받아 자녀에게 주며 부모됨을 증명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부모는 자녀와 눈빛을 맞추고, 껴안고, 볼을 부비고, 음성을 들려주고, 함께 함으로써 부모의 몇 마디의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자녀의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해주려고 할 것이다.
부모는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관계를, 사랑을 증명하고 싶을테니까.

하나님의 존재는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것이 느껴져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고백한 자들만 아는 것이다.
단순히 존재 사실만 아는 것이 아니다.
존재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분이 자신에게 어떻게 다가오셨는지를 깨달았기에 지극히 주관적이고 정서적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깨달은 사람들은 본인만의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타인에게 말한다면 그 내용은 거의 ‘에이, 그런 것 말고’라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자신에게는 너무도 확실하고 선명한 경험이요, 증명이지만 타인에게는 전혀 아닐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타인이 설득되도록 증명할 수 있을까?
주관적인 것을 객관적으로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것은 기독교의 성격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인간이 교리를 배우고 종교형식을 익혀 도달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분이 인격적으로 우리의 인격에 다가오신다.
사람의 말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할 수 있지만, 사람의 말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각자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러니 아는 사람은 알아서 흥분하고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냉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