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 단상

전국에 건조주의보가 내리고 곳곳에 큰 산불이 났다.
나무를 심어도 시원찮은 판국에 수십 년 자란 나무들이 속수무책으로 타들어가는 걸 보느니 차라리 뉴스를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행정력으로는 진압이 어려워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하늘만 바라보는 상황에 내린 제법 많은 양의 봄비는 실로 단비였다.
공교롭게 식목일에 내린 많은 비 때문에 식목행사는 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식목행사로 심을 수 있는 나무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나무를 살렸다.
또한 쟁기질을 해야하는 논밭이 충분한 물을 머금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모저모로 감사한 단비이다.

나무를 심는 것은 지금 당장 무엇을 바란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수십 년 뒤에 이뤄질 큰 그림을 보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하지만 땅을 살리고 후손을 살리는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들이고, 돈을 들여야만 할 수 있는 부담스런 일이기에 자신만을 생각하고, 내가 살아가는 시대만 생각한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기독교 신앙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부산에 내려온지 3년째를 맞으며 여러 사람이 정말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며 칭찬한다.
이어서 열매가 있냐고 묻는다.
나는 여전히 심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아직도 심고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래서 열매가 맺히는 게 맞냐고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나는 내가 열매를 보기 위해 심는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조생종 열매를 보여 주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조속히 열매 맺게 하는 법을 실험하거나 연구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젊을 때 신속한 결과를 위해 몸이 상하도록 일했지만, 이제는 내 한계를 인정하며 오히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연히 쏟아야 할 마음과 정성을 들이고 있을 뿐이다.
열매는 내 소관이 아니다.
비를 내리시고 자라게 하시는 분께서 알아서 하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