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은퇴식

어제(11/23) 어느 목사님의 은퇴식에 다녀왔다.
사실 나는 다른 계획이 있었고, 은퇴하는 목사님은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른다.
노회에 참석하면서 교회 이름만 한두 번 들었을 따름이다.

그런데 후임목사가 단톡방에 은퇴식 안내를 하면서 ‘노회 목사님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목사가 은퇴를 하는데 축하해 주는 손님이 별로 없다면 은퇴하는 당사자든 호의로 그런 자리를 열어준 후임목사와 교회 성도들이든 서로 민망할 것이다.
오랫동안 지하에 있었고, 성도도 몇 명 되지 않는 작은 교회이니 손님이 많을 리가 없을 것 같았다.

얼른 옷을 챙겨 입었다.
졸저 두 권도 챙기고 은퇴를 축하드린다는 글도 썼다.
은퇴식 전에 찾아가서 축하드린다며 인사를 드리니 깜짝 놀라신다.
나는 부산노회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 목사님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신다.
선물이라며 책 두 권을 내밀었다.
다시 고맙다고 겸손히 인사하셨다.

나중에 어떻게 목회하셨는지 듣는데 몇 번이나 울컥했다.
교회를 개척하고 처음 건물을 얻으려는데 사기를 당해 모두 날린 이야기,
지하에 교회당을 겨우 얻었는데 상가에 불이나서 소방차가 뿜어낸 물이 지하로 흘러들어 무릎까지 찬 물을 목사님과 사모님 둘이서 퍼낸 이야기 등등.
나로서는 몇 번이나 포기했을 것 같은 길을 걸어오셨다.
그리고는 큰 교회에서 평탄한 목회를 해오신 것 같은 얼굴로 감사하다 하신다.
그 내공이 너무도 부러웠다.

은퇴식 자리를 나오면서 다시 인사를 드렸다.
“저 같으면 몇 번이나 포기했을 것 같은 길을 너무도 잘 감당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존경합니다.”
큰 교회에서 은퇴하고, 화려한 은퇴식을 하면 축하객도 많다.
심지어 정치인까지 와서 축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곳은 오라고 해도 가기 싫다.
그런 자리가 아니기에 정말 존경하고 사랑하고 축하하는 사람들만 모였다.
이곳이 겉만 화려한 은퇴식이 아니라 정말 진중한 은퇴식 자리였다.

정석중 목사님과

그 자리에서 경남 창녕 우포늪 부근에서 목회하시는 정석중 목사님을 만났다.
정 목사님은 내가 하는 일을 귀하다며 많이 격려해 주셨다.
우포늪을 관광하러 오는 비신자들을 많이 만나는데 내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이 큰 도움이 된다며 말씀해 주셨다.
솔직히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이런 말을 한다는 걸 공개하는 것이 민망하다.
다만 그 누군가에게 일말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민망함을 무릅쓰고 하는 것인데, 소심한 내게 큰 격려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