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평촌교회(담임 방상웅 목사, http://namchon.org)는 내가 1999년 1월부터 신대원 3학년 때 교육전도사로 가서 2004년 9월까지 전임전도사, 전임강도사, 행정목사로 있었고, 35세인 2004년 9월부터 2018년 6월까지 햇수로 15년 담임목사로 섬겼던 교회이다.
2017년까지만 해도 나는 이 교회에서 은퇴할 줄 알았다.
내가 안수한 임직자들이 장로, 안수집사, 권사가 되고, 유치부 때 보았던 아이들이 청년이 되고, 지도했던 청년들이 부모가 되고, 교역자가 되는 것을 보며 참 기뻤다.
다음세대 교육이 주일에만 되는 뉘앙스가 싫어 성경과 교회사를 공부한 후 가정과 교회가 말씀으로 연결되어 함께 다음세대를 세운다는 의미로 ‘주일학교’를 ‘무지개학교’로 개명하고 그 철학으로 교육해 나름 안양 지역에서 다음세대 교육을 잘하는 교회로 알려졌다.
나는 종종 그렇게 자란 청년들이 머리 희끗희끗한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는 모습을 그리곤 혼자 설렜다.
남서울평촌교회는 그런 단꿈을 꾸게 하는 교회였다.
모텔에 둘러싸인 상가에 있다가 교회당을 신축하여 머릿돌엔 내 이름이 새겨져 있다.
건축할 땐 여러 어려움이 많은 법인데 오히려 건물과 함께 사람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감사하게도 성도들이 합심하여 그 일을 감당하고 함께 기쁨을 나눴다.
그러나 고등학교 동창의 죽음을 계기로 1년 넘게 고민하며 기도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그 교회를 사임했다.
내 젊음과 애정을 20년간 쏟은 교회인데 어찌 서운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다들 이상하게만 보는 그 일을 했다.
2020년 12월 17일 부산으로 이사하기 전날 후임 방상웅 담임목사님이 안양에서부터 서울 노원까지 먼 길을 일부러 방문해 주셨다.
나는 방 목사님의 위임을 축하했고, 방 목사님은 나의 가는 길을 듣고 격려해 주셨다.
한 달쯤 뒤 익숙한 음성으로 최근 장로 임직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단순 안부전화인 줄 알고 내 형편과 앞으로의 계획을 묻기에 가감없이 말했다.
장로님은 자세히 듣고 “남서울평촌교회가 당연히 후원해야 하는데 일찍 챙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담당 위원회에 이 내용을 전달하겠습니다” 하셨다.
그리고 1월부터 바로 후원이 시작되었다.
아직은 실험적으로 보이고 검증되지 않은 국내 도시 선교를 교회적으로 후원하기는 좀 조심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지만 전담임목사를 신뢰하는 마음으로 지지하고 후원을 시작한 남서울평촌교회가 참 감사하다.
간혹 도시선교를 시작한 내게 예전 담임했던 교회에서 후원을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나는 자랑스럽게 “그럼요”라고 대답한다.
누가 뭐래도 남서울평촌교회는 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내 인생의 한 부분이며, ‘낮은울타리’라고 명명된 이 사역의 든든한 후원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