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청춘, 공황장애

예전에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TV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가?”라고 물었을 때 “뉴스요”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였다.
‘가요, 드라마, 예능, 스포츠 등 얼마나 볼 것이 많은데 그 재미없는 뉴스를 볼까?’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됐다.

드라마를 봐도 예능을 봐도 재미가 없다.
어떤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나는 그 이야기 구조로 들어가서 작가가 끌고 가려는 대로 내 생각이 따라가는 것이 싫어 보지 않는다.
영화도 여러 이야기가 얽혀 있는 것은 싫다.
권선징악의 단선구조가 좋은데, 어벤져스같은 딱 내 취향의 영화가 갑자기 ‘마블의 세계관’이 어쩌구저쩌구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러니 영화의 액션장면, 스포츠의 하일라이트를 채널을 돌려가며 본다.
그런데 챙겨 보는 하나가 화요일 밤 ‘불타는 청춘’이다.
옛날 스타들이 계급장 다 떼고 평범한 한 사람으로 먹고 자는 것, 외로운 사람들이 서로에게 따뜻한 격려가 되고 의미가 되는 것, 얼굴을 활짝 펴고 아이처럼 웃는 것이 보기 좋다.
더 좋은 것은 시의적절하게 흐르는 옛 가요들이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올려 출연진과 교감하게 한다.

어제 6년을 맞은 불청에서 가장 공을 들였다는 예전 청춘스타 김찬우가 나왔다.
‘사랑이 뭐길래’ 대발이 최민수의 손아래 처남으로 나왔던 사람이다.
왜 활동을 멈췄냐고 물으니 공황장애가 심해서 그랬단다.
촬영이 있는 동해안에 오는데 서울양양간 고속도로가 편하지만 10km가 넘는 터널을 들어가지 못해 옛길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 사람의 병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어 참 마음이 아팠다.

처음 서울양양간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나도 처음 그 길로 들어섰을 때 아무 생각없이 들어갔다가 터널이 너무 길어 “어, 너무 긴데” 했다가, “이러면 안되는데” 했다가 “여보, 나 너무 힘들어” 했던 적이 있다.
중간에 사이렌같이 요란한 소리도 나고, 무지개 조명도 있고, 심지어 외부같이 밝은 조명도 있지만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터널 안이라 차선을 바꿀 수 없어 터널 안이라고 서행하는 차 뒤에 걸리면 꼼짝없이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

보통 불청을 보고는 아내와 옛날 이야기를 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어제는 바로 잠들지 못했다.
먼저 그냥 안고 달래며 살아야 하는 내 고통이 떠올랐고, 이어 공감 받지 못하는 고통과 그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픔을 겪은 자로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해의 폭을 넓히고, 아픈 사람들에게는 공감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내 경험을 글로 써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