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수리중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올 때 부동산 대란과 겹쳐 집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주일 밤늦게까지 사역을 마치고 매주 월요일이면 아내와 부산에 내려와서 집 보러 다니는 일을 한 달 넘게 했다.
적당한 집을 보게 돼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계약을 하겠다고 통보하면 매물을 거둬 들이기를 몇 차례 당했다.
또 적당한 매물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부동산 중개인이 다른 매물을 소개한 경우도 있었다.
서울 부산간 장거리를 오간 것만도 힘든데 부동산과 사람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된 기분이 들었을 땐 정말 힘들었다.
그 때 일을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정말 기적적으로 집을 구했다.
25년이 지난 아파트였지만 살던 집은 새로 들어올 사람이 집을 보지도 않고 계약을 마쳤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마음이 급해서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었다.
오래된 집이라 새시 교체 등 수리를 해야 했다.
집을 구하느라 서울 부산간을 자주 오갔기도 했고, 서울에서 이사준비도 해야 하기에 인테리어까지 꼼꼼히 살필 몸과 마음의 여력이 없었다.
거의 모든 것을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다시피 했다.

궁금해서 어쩌다 들른 현장에서는 엄청난 소음이 났다.
장비와 자재가 자주 드나들어야 하니 현관문을 열고 있었지만 내가 미안해서 문을 닫아야 할 정도였다.
내가 소리에 민감하긴 하지만 잠시 현장에 있을 뿐이었는데도 소음이 너무 괴로웠다.
기존 주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12월 20일 이사를 오고 24층까지 있는 모든 가정에 감사편지와 함께 20리터 종량제 봉투를 5개씩 돌렸다.
덕분에 환영편지와 선물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사한 그 날부터 수리를 하는 소음이 거의 끊이지 않는다.
오래된 아파트이다 보니 집집이 돌아가면서 계속 수리를 하는 것이다.
얼마전 바로 아랫집에서 천장을 뚫는 것같은 소음이 나서 확인해 보니 4개 층 아랫집이었다.
정말 바로 아랫집이 수리한다면 엄청난 소음이 날 것 같았다.
우리집이 수리할 때 아래윗집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그냥 지냈다.
지난 일요일 이사를 들어왔다.

한동안 잠잠하나 했더니 그저께부터 윗집에서 요란한 소음이 들렸다.
엘리베이터에 특별한 안내가 없어서 조금 손볼 곳이 있나 보다 했다.
그런데 어제 사다리차가 오더니 새시를 뜯어내렸다.
본격적인 공사를 하나 보다.
아무런 양해를 구하지 않고 그냥 공사를 하는 것이 좀 야속했다.
오늘도 아침부터 드릴 소음이 상당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소파에 팔꿈치를 대고 기도하다 소음에 기도가 끊기기도 했다.

문득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인생이 없으니 사는 동안 계속 수리 중이다.
주택을 수리할 때 소음이 나고 주변 이웃이 불편한 것처럼 인생을 수리할 때도 그런 것 같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아래윗집이 힘들긴 하지만 사실 본인이 가장 힘들고 신경 쓸 일이 많은 것처럼 인생을 수리할 때도 본인이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집을 고칠 때 “이웃집이 수리하는 모양이네”하며 이해하고 참아주는 것처럼 인생을 수리하는 것처럼 보일 때 곁에서 “인생을 수리하는 모양이구나”라며 조금 참아준다면 당사자가 그 어려운 시기를 좀더 잘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하는 중에도 드릴 소음이 계속된다.
소음의 강도가 점점 더 커지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오늘은 집에 있으면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