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울타리 양림동 선교사 유적지 탐방(3)

낮은울타리는 먼저 선교사가 설립하고 올해로 121년이나 된 광주양림교회(합동, 담임 조성용 목사)에서 주일 낮예배를 드렸다.
낮은울타리 식구들은 큰 예배당에서 오케스트라와 오르간이 연주하고, 성가대가 찬양하는 예배에 참석한 것이 정말 오랜만이다.
나는 복잡한 묘한 정서를 느꼈다.

기념사진은 오웬 기념관(중간 회색 건물)과 기독간호대학교 건물이 보이는 통합측 광주양림교회 앞에서 찍었다. [사진 송정현]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선교사 유적지 탐방도 식후경이다.
처음 광주에 왔을 때 조성용 목사님이 식사 대접을 해 준 스페인 식당인데, 너무 맛있고 특색이 있어서 그 후로 광주에 올 때마다 이 식당을 찾았다.
내가 좋았으니 당연히 낮은울타리 식구들에게도 이 식당의 음식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자랑을 너무 해서 혹시 맛이 덜하면 어쩌나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식구들 모두 너무 맛있었다고, 셰프님의 자랑처럼 재료가 좋기 때문인지 먹은 후에도 속이 편해서 좋다고, 또 오고 싶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음식에 대해 설명하는 스페인 식당 셰프님 [사진 강신욱]

식사 후 본격적으로 탐방을 시작했다.
먼저 식당에서 가까운 ‘조아라 기념관’을 찾았다.
사실 나도 양림동에 오기 전에는 조아라 여사에 대해 알지 못했다.
조아라 여사는 선교사로부터 교육을 받고 후에 광주 지역에서 여성 교육과 구제에 힘써서 ‘광주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분이다.

조아라 기념관 앞에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최흥종 기념관’이 나온다.
최흥종은 광주의 이름난 깡패였으나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신자가 되었으며, 포사이드 선교사의 태도에 감명을 받고 확실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특히 일제 시대에 한센병 환자들 수백 명을 이끌고 조선총독부까지 행진하여 조선총독부로부터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시설을 소록도에 약속 받은 일은 유명하다.
최흥종 선생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자신은 죽었고 다섯 자기 얽매임으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의미로 호를 ‘오방’으로 지었다고 한다.
광복 후에는 여러 정치인들로부터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여전히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했다.
김구 선생도 찾아왔다가 거절당하고 ‘화광동진’이란 휘호를 남기고 갔다고 한다.

‘오방’의 의미
김구 선생이 남긴 ‘화광동진’ 휘호 설명패
최흥종 다큐멘터리를 관람하는 낮은울타리 식구들
최흥종 기념관 앞에서
최흥종 기념관 위의 교회당 모형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낮은울타리 식구들

다음은 최흥종 기념관 바로 옆에 있는 ‘유진벨 기념관’을 찾았다.
한국식 이름은 ‘배유지’이고 대를 이어 우리나라에서 사역을 하는 집안이다.
유진벨 재단은 지금 우리나라에서 주로 북한 주민을 위한 결핵 퇴지 사역을 하고 있다.

길을 건너 호남신학대학교 내에 있는 선교사 묘지를 찾았다.
이제 우리에게 익숙해진 오웬, 유진벨의 묘비를 보며 숙연해졌다.
작은 비석도 있었는데, 고인의 연령이 두 살 또는 네 살인 것을 확인하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이 결코 공짜일 수 없고, 누군가의 목숨을 건 헌신으로 받게 된 너무도 값진 것임을 다시 확인했다.
옆에는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 호남 지역에서 순교한 우리나라 성도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그곳에서 한 식구는 순교하셨다고 말로만 듣던 숙부님의 성함을 발견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한국 호남지역 순교자 기념비 앞에서

호남신학대학교정을 나와 뒤편으로 내려와서 윌슨 선교사 사택을 보고, 선교사들이 보고 반가와했다고 해서 사적으로 정해진 호랑가시나무를 만났다.

호랑가시나무 앞에서

그렇게 양림동 선교사 유적지를 한 바퀴 돌고나니 다리도 아프고 입도 심심해서 가까이에 있는 이이남 갤러리에 갔다.
이이남은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이이남 갤러리에서 차 한 잔

원래는 양림동 펭귄마을도 돌아보고, 518 민주광장과 아시아 문화의 전당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체력의 한계를 느꼈다.
다들 다음날 출근도 해야 하는데 각각 부산과 양산까지 4시간 운전하는 것도 부담되어 일찍 광주를 나섰다.
그냥 흩어지긴 서운해서 섬진강 휴게소에 모여 저녁을 먹고 돌아왔다.
정말 꽉찬 양림동 선교사 유적지 탐방 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