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 2명과 성경공부(13) – 계시록 14:6-13

비신자들과 요한계시록을 공부한다고 하니 다들 놀란다.
신앙생활을 제법 한 분들에게도 요한계시록이 어려운데 어떻게 처음 성경을 배우는 사람들과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냐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분들과 만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분들은 창세기나 요한계시록이나 생소하고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성경의 이야기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줄거리가 있는 부분은 먼저 그 내용에 익숙해져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차라리 기독교 세계관 또는 역사관을 드러내 주는 요한계시록을 먼저 보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호응하며 잘 따라와 주시는 분들을 만난 것이 내게 복이다.

“요한계시록을 볼 때 꼭 기억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요한계시록이 지구와 역사의 종말에만 일어날 사건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점, 둘째는 단순히 시간순서대로 기록한 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를 무시하면 ‘지구의 종말에는 요한계시록 1장부터 22장까지의 사건이 순서대로 나타난다’라는 식으로 요한계시록을 보게 되는데, 그러면 종말에 일어날 사건 중심으로 성경을 보게 됩니다. 미래를 알고 싶은 인간의 호기심이 발동하는 거죠. 요한계시록은 당시 박해 당하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신앙을 다시 강조하기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공부를 하다 보면 왜 성경공부를 하는지 진정한 목적을 잃을 때가 많다.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것도 길을 찾기 위한 것이므로 숲의 아름다움과 나무의 특색에 천착하여 길을 찾고 그 길을 가야하는 진짜 목적을 잃지 않도록 자주 상기해야 한다.
그것은 처음 성경을 접하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기에 더욱 중요하다.

“6절부터 13절까지는 세 천사가 나옵니다. 가끔 귀신을 봤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혹시 천사 보신 적 있으세요?”
툭 튀어나온 질문을 하고선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다.
‘귀신을 본 사람은 있다는데 왜 천사를 본 사람은 없을까?’
이분들은 ‘뜬금없이 웬 천사?’라는 표정으로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제가 목사지만 저도 본 적 없어요. 어떻게 생겼나 정말 궁금합니다. 진짜 곱슬머리인지, 금발인지”
어릴 적 한 번쯤은 가져 봤음직한 질문에 공감하는 것 같았다.

“천사가 날아다니고 천사가 말한다고 했습니다. 이건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면 그 때 종말의 징조로 천사가 날아다니는 것이 보이고, 천사가 우렁차게 말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그것이 우연히 돌아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방향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계시록 12장부터 ‘단순한 시간 순서가 아니다’, ‘말세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마지막까지의 일을 반복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라는 말을 자주 했더니 이젠 그 정도는 상식이라는 표정들이다.

“첫 번째 천사가 날아가는데 모든 민족에게 전할 복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복음’이라고 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다음에만 전파된 것을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아담이 타락한 때부터 하나님이 사람에게 다가와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이 복음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모든 민족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비신자들을 만나 보니 원래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 복음은 이스라엘의 것인데 다른 민족도 수입하듯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이분들에게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그제서야 다른 민족들에게도 전파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복음은 모든 민족을 지향하고 있었음을 종종 말하고 있다.

“7절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하나님을 경배하라’라고 합니다. 심판이 다가왔기 때문에 갑자기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12장에서부터 봤던 것처럼 마귀와 귀신들을 향한 심판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정해졌습니다. 그 마지막 심판으로 가는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조물주이신 하나님을 인식하고 절대자인 그분을 신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걸 환상으로 요한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사도 요한이 받아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한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기록한 것임을 상기시켰다.

“8절에 두 번째 천사가 나옵니다.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하는데, 모든 나라에게 음행하게 하고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라고 합니다. 바벨론이 무엇을 상징한다고 했지요?”
“시스템요”
“예, 맞습니다. 바벨론은 세상의 제국과 사상, 시스템인데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세상을 따르게 한 것을 음행하게 한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마치 술에 취해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한 것처럼 말이지요. ‘진노의 포도주’라는 건 은유적 표현입니다. 그렇게 탄탄하게 보이고 멸망할 것 같지 않아 사람들이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 세상의 제국과 시스템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바벨론’이 나왔을 땐 고대 바빌로니아 제국이라고 설명해야 할 정도로 생소한 표현이었지만, 몇 번 반복되니 이젠 익숙해졌다.

“9절에 세 번째 천사가 나오는데, 아주 익숙한 내용을 말합니다.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여기에 나오는 표가 진짜 어떤 표를 받는 것이 아닌 것 아시죠?”
“그건 알죠”
“가르친 보람이 있습니다. ‘세상 시스템에 순응하고,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여 생각하고 행동하면’이란 의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진노의 포도주를 마신답니다. 진노의 포도주가 무엇일까요? 정말 맛이 없고 쓴 포도주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바로 뒤에 ‘진노의 포도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옵니다.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흔히 ‘지옥’으로 알려진 곳에 들어가는 형벌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11절에는 거기에 들어간 사람들이 영원히 고난을 당하며 형벌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12절 이하는 그런 세상에서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성도는 인내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세상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으니 당연히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하기 어렵고 오히려 성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야 할테니까요. 사실 예수님을 믿고 일요일에 교회당에 가서 한 시간 예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성도라면 세상적 가치관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가치관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에 세상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어 어렵습니다. 안타깝게도 자기 입으로 기독교 신자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적 가치관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요? 그렇게 살면 천국에 못가는 건가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교회가 비난을 받는 것이죠. 좀 다르게 살 줄 알았는데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과 똑같이 살거나 아니면 더하다는 느낌을 주니까 말입니다. 정확하게 누가 천국에 가느냐 못가느냐는 잘 모릅니다. 그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것인지 아닌지를 다른 사람이 판단할 수 없으니까요. 자기 자신도 모릅니다. 성경에 보면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으니까요. 오직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면 죽어 봐야 아는 건가요?”
“자기 속에 일어나는 일과 자신의 사고방식과 자신의 언행을 통해 거의 알 수 있지요. 저는 어떨 것 같습니까?”
“천국 가실 것 같아요”
“예,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13절에 그래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되도다’ 했습니다. 세상 시스템에 순응하며 살지 않고 다른 가치관으로 사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그런데 끝까지 예수님을 믿는 가치관을 붙잡고 살다가 죽은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이 ‘복되다’하신 겁니다. 그들은 이제 그렇게 가치관이 부딪히는 일이 없는 곳으로 가게 되니까요. 그곳이 어디일까요?”
“천국요”
“예, 그래서 가치관이 부딪히는 수고를 그치고 쉬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새롭게 가지게 된 가치관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살게 되니 몸과 마음이 상할까봐 조바심을 가지거나 충돌할 일이 없게 된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