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 2명과 성경공부(15) – 천지창조(1)

오늘은 일기예보대로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
얼마전 할인상품으로 구입한 흰색 목폴라를 처음 입고 조금 두꺼운 연베이지 코듀로이 자켓을 걸쳤다.
이미 은행잎 대부분을 떨어뜨린 강한 바람이 여전히 불어 모임을 하는 카페로 걸어가는 5분 남짓 동안 손이 조금 시렸다.

5분 전에 도착하니 우리가 모임하던 장소에 다른 손님이 앉아 있었다.
늘 시키던 따뜻한 청귤차를 주문하고 좌우 다른 손님들과는 가장 멀다고 할 수 있는 거리에 자리를 잡았다.
뒤이어 한 사람씩 들어왔다.
각자 주문을 하고 앉아서 보니 미리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닌데 다들 흰색 옷을 입고 있었다.
목폴라, 코트, 셔츠, 바지, 스커트 등.
내가 입을 뗐다.
“오늘 드레스코드가 흰색이네요”
“어, 그러네요. 아이보리예요”
역시 여성들이라 더 민감하게 보는 부분이 있다.
화이트가 아니라 아이보리가 맞다.

“오늘부터는 전에 말씀드린대로 성경의 주요 사건들을 하나씩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은 성경에 처음 나오는 이야기인 ‘천지창조’입니다. 이 이야기는 성경 가장 앞에 있는 ‘창세기’에 나오는데, ‘창세기’는 ‘세상이 창조된 기록’이란 의미입니다. 그런데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창세기는 지금부터 약 4천년 전에 기록된 고대문학입니다. 이걸 우주와 지구와 생물이 창조된 이야기라고 해서 과학 교과서처럼 보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모임 때 가족 휴가로 빠졌던 한 분이 말을 이었다.
“안그래도 어제 아들과 창조와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요. 아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진화를 믿을 수 없대요”
학교에서 진화론 교육을 받는 아이가 그런 말을 했다니 흥미로워서 질문했다.
“아이가 그런 얘길해요? 왜요? 그래서요?”
“그래서 자기는 외계인 창조설을 믿는대요”
“예? ㅎㅎㅎ”
아이의 대답에 다들 빵터졌다.
“아이의 생각에도 우주에 떠돌던 아미노산이 우연히 만나 단백질 합성체가 되고 생명체가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아주 고등한 생명체가 뭔가를 시작했다고 믿는 것이 다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네요. 그런데 외계인이나 신이나 존재 증명을 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신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해보세요”

“성경 제일 처음 구절인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창조하다’라는 동사 앞에 나오는 주어는 항상 ‘하나님’입니다. 다른 주어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창조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는 것이죠. 사람도 무언가를 만들지만 재료가 있어야 하니까 그건 창조가 아니라 제조라고 해야죠. 그 재료를 처음 만드는 존재가 하나님이란 겁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이란 존재를 인간이 잘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라 그러고, 영어권 사람들은 ‘GOD’이라 부르고, 성경은 ‘엘로힘’이라고 하는데 정확하게 누구인지, 어떻게 존재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신’이죠. 사람도 부모자식 관계에서 자식이 아빠엄마의 관계를 정확하게 모르고 존재양식을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는데, 사람이 신의 존재양식을 다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죠. 아마 하나님이 설명해 줘도 모를겁니다.
예전에 영화 인디애나존스 4편에서 남미의 문명을 만들어준 것이 외계인이라는 설정으로 나오는데, 여성 과학자가 외계인의 지식과 내용을 알고 싶어하기에 외계인이 그 사람에게 알려주는데 감당을 못해서 사망하는 걸로 나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인간의 한계를 표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인간이 호기심으로 알려달라고 해서 하나님이 알려주시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창조한다 그래서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아무 것도 없는 전무(全無)’는 존재할 수 없지요. 서양철학자 데카르트도 모든 인식을 부정했는데 모든 것을 없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생각만은 남아있기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절에 ‘흑암’과 ‘깊음’이 나옵니다. 흑암이란 게 있고, 깊음이란 게 있는거죠. 그 흑암이 무엇인지, 깊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흑암은 단순히 캄캄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깊음도 요한계시록 공부할 때 언급했던 마귀와 귀신들이 갇혀 있던 무저갱처럼 단순한 물리적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무질서, 절망, 혼돈 등의 상태였을 것입니다”
역사시대도 다 알지 못하고, 선사시대도 까마득한데, 창조를 말하자니 나도 막막하다.
그걸 듣고 있는 분들의 표정도 막막해 보였다.
“어떤 철학자가 ‘신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존재의 근원이다’라고 했답니다. 사람도 가만히 있지 않고 무언가를 만들고, 관계를 형성하는데 ‘신’은 무한한 존재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죠. 창세기는 시시콜콜히 창조의 과정을 역사책이나 과학책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존재가 있음을 드러내는 책이다라는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조금 표정이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