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준비한 낮은울타리에서 처음으로 공부하는 날이다.
약속시간은 10시 30분인데 나는 9시부터 가 있었다.
전날 청소기로 한 번 돌렸으니 청소는 할 것이 없었으나, 미리 보일러를 틀고 패드와 모니터를 HDMI로 연결해서 잘 나오는지 점검을 하기 위해서였다.
55인치 큰 모니터에 내 앞에 놓인 패드와 같은 내용이 큼지막하게 나오자 나는 무슨 큰 일을 성공한 듯 기뻤다.
10시 30분이 되자 바닥도 제법 따뜻해졌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차, 초인종이 안된다는 걸 깜빡했다.
문을 열었더니 두 분이 함께 들어왔다.
“초인종이 안돼요”
“예, 초인종이 안된다는 걸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깜빡 했네요. 문을 잘 두드리셨습니다”
두 분은 별로 크지 않은 공간을 한 눈에 둘러보며 말했다.
“목사님, 잘 꾸며 놓으셨네요. 정말 애쓰셨어요”
“애썼지요. 여기 있는 가구들은 다 이케아에서 사서 조립한 것들입니다”
“이것도 조립하신 건가요?”
한 분이 제법 멋있어 보이는 아일랜드 식탁을 보며 물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싱크대가 보이는 것이 좀 그랬는데, 아내가 현관문과 싱크대 사이에 아일랜드를 두는 게 좋겠다고 해서 구입했다.
“예, 보기에도 좋아 보이죠? 휴가 나온 아들 덕분에 만들 수 있었습니다”
책장과 책상을 들여놓은 방을 보더니 “여긴 유튜브 실이네요”라고 했다.
어두운 도배지에 책상 앞에 놓여진 카메라와 조명을 보고 그런 것이다.
“유튜브 실까지는 아니고요, 제가 공부하고 설교영상을 찍는 곳입니다”
이 방은 발을 들여놓지도 않은 채 목만 이리저리 돌려 구경했다.
아무래도 나의 개인공간처럼 보였나 보다.
구경을 마치고 커피를 한 잔씩 들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소파도 목사님이 하신 건가요?”
“아뇨, 힘들어서 조립을 부탁했습니다”
“잘하셨어요. 가구 조립 힘들어요”
“기사분들이 조립하시는 것 보고 내가 직접 안하길 정말 잘했다 생각했습니다”
잠시 그렇게 환담을 나누고 공부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은 모니터를 보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잠깐만요”
내가 리모콘으로 모니터를 켜자 창세기 3장 본문이 나왔다.
“우와”
다들 탄성을 냈다.
까맣던 화면이 환한 흰색으로 변하고 거기에 까만 글씨가 보이자 순간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두 돌판을 만드시는 걸 본 모세가 이런 느낌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달된 것처럼 모니터에 보이는 말씀도 같이 공부하는 분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생겼다.
“오늘은 인간타락에 대한 내용인데 그 내용이 성경 중 창세기 3장에 나옵니다. 지난 번에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두셨다고 들었던 것 기억하세요?”
본문을 조금 올려 창세기 2장의 뒷부분을 보여줬다.
“예”
다들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지만 눈은 성경말씀이 보이는 모니터를 향해 있었다.
내가 패드 펜슬로 밑줄을 그으며 1절 앞부분을 읽었다.
모두 시선을 주고 있는 모니터에는 내가 긋는 대로 붉은 줄이 나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혹시 뱀 좋아하세요?”
첫 구절에 뱀이 나오긴 하지만 뱀을 좋아하냐는 목사의 뜬금없는 질문에 좀 놀란 눈치다.
“아니요”
“간혹 뱀을 애완용으로도 키우는 사람도 있어서요. 보통 뱀을 징그럽게 여기고 싫어하죠. 그런데 고대에는 뱀이 지혜와 장수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혹시 서양의 유명한 의대 마크같은 것들을 보면 십자가와 함께 나오는 짐승이 있는데 보신 적 있으세요?”
“예, 뱀이 칭칭감고 있어요”
“맞습니다. 고대 로마의 유적에도 바로 그런 표시가 나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 왕관에도 있고요. 고대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뱀이 사탄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공부했던 요한계시록에 사탄을 ‘옛 뱀’이라고 했던 것 기억하시죠?”
“예”
기억했냐고 물을 때 기억한다고 대답하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용기있게 진도를 나갈 수 있다.
“뱀이 사탄의 도구가 되었다고 뱀 자체를 사탄처럼 여기고 혐오할 필요는 없습니다. 뱀은 뱀일 뿐입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시 뱀을 기르는 사람을 만났더라도 사탄을 좋아하는 사람처럼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사탄의 도구가 된 뱀이 여자에게 다가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