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이 괴물같고 흉측한 모습이었으면 여자가 도망을 가거나 아담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입니다. 사탄은 간교해서 사람에게 거부감 없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장해제한 여인에게 사탄이 묻습니다. 자, 화면을 보세요”
창세기 3장 1절을 화면에 띄웠다.
“1절 뒷부분을 같이 읽어 주시겠어요?”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나님이 에덴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나요?”
“아닌 것 같은데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화면을 올려 창세기 2장으로 갔다.
“16절과 17절을 읽어 주세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잘 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셨나요?”
“아니요, 먹으라고 하셨는데요”
“여기서 ‘임의로’는 ‘마음대로’란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걸 사탄이 배배꼬아서 질문한 것입니다. 학창시절에 선생님이 시험에 ‘틀린 것이 아닌 것이 아닌 것은?’이라고 문제를 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이 맞추라고 낸 문제가 아니지요. 사탄도 하나님이 정말 뭐라고 하셨는지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라 여인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 배배꼬아서 물은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시험볼 때 지문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틀리지 않는데 대충 알고 있으면 보기를 볼 때 이것도 맞는 것 같고 저것도 맞는 것 같아 헷갈리게 되죠. 지금 여인이 그런 상황입니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에덴동산에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셨으면 선악과를 만들지 말고 사람이 타락없이 행복하게 살게 하시지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곤란한 문제를 만드셨을까요?”
“그러게 말이예요.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하나님이 선악과를 괜히 만드셔 가지고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 같아서요”
“아마 선악과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선악과에 대해서는 몇 가지 생각할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무엇일까 생각해 봅시다. 선악과는 무슨 과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사과요”
“복숭아요”
“성화에 보면 아담이나 하와가 사과처럼 보이는 과일을 들고 있기도 하죠. 남자의 목에 툭 튀어나온 걸 ‘아담스 애플’이라고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과를 먹으면 사람이 똑똑해질까요?”
“아니요”
“그건 복숭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그 열매 자체가 절대 선과 절대 악을 알게 하는 탁월하고 독특한 지식을 공급할 수 있는 특수한 열매가 아니라는 겁니다. 문제의 핵심은 하나님이 정하신 선과 악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내가 선과 악의 기준을 설정하고 싶다는 인간의 욕심입니다. 지금 여기 몇 명이 한 자리에 앉아 있지만 선과 악의 기준은 똑같지 않을 겁니다.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어떤 사람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그럴 수는 없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건 선과 악의 기준이 다른 겁니다. 그러면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논쟁을 하기도 하고 아주 심각한 상황이면 힘겨루기를 하기도 하겠죠. 하나님은 인간이 피조물로서 창조주인 하나님이 정하신 선악의 기준 아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성적 존재인 인간으로서는 선악과를 보면서 자신 위에 이 모든 질서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해야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평범한 나무를 가리켜 이건 손대지 말라 말씀하신 겁니다. 혹시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를 아세요?”
“예, 봤어요”
“1탄은 모세 이야기인데, 2탄은 요셉 이야기입니다. 요셉은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갔는데 지혜와 성실함으로 가정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총무 노예가 됩니다. 그 때 주인이 요셉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 집의 모든 것은 네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내 아내만은 손대지 말아라’ 주인의 아내를 손대는 건 주인의 자리를 넘보는 것이고, 노예와 주인 사이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시고 사람에게 금하신 것을 그런 의미로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지 않았으면 우리가 아직도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었을까요?”
“사람들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특히 학창시절에요. 아담 할아버지와 하와 할머니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지 않았다면 힘들게 학교 갈 필요도 없고, 시험을 칠 필요도 없고, 경쟁하고 싸우는 일도 없을테니까요.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텐데요”
“맞아요”
“그럼 우리는 에덴동산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를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그 생각은 안해봤는데요”
“저는 만약 지금까지 에덴동산에 있으면 선악과 옆에서 ‘하나님이 이걸 왜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 그렇게 해롭게 보이지도 않는데’라며 밤낮 선악과를 묵상하고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어, 정말 그러네요. 저도 그럴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뱀이 뭐라고 하겠지요”
“그렇겠네요”
“지금 우리 모두가 각자 선악의 기준을 갖고 있잖아요. 우리 모두가 잠재적인 아담과 하와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네요”
“실은 우리도 아담과 하와의 위치에 있었다면 언젠가는 똑같이 할 것이면서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인 양 아담과 하와를 원망하고 있죠. 이것 또한 사탄의 술책일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는 사실 우리의 본성과 실체를 아주 잘 드러내는 대표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선악의 기준을 내가 잡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인 하나님께로 다시 돌려 드리고 나는 피조물의 자리로 돌아가 그 기준에 순종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