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 여성들과 성경공부 – 타락 후(1)

약속시간은 오전 11시였다.
일기예보상 기온은 부산 날씨답지 않게 너무 추웠다.
어제 보일러를 틀어놓고 갔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2시간 30분 전인 8시 30분에 낮은울타리에 도착했다.
일단 난방 온도를 더 올리고 기도상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늘 기도하던 대로 하지 않고, 먼저 어제 노회에서 교회 개척 청원이 허락된 것을 놓고 기도했다.
생각이 많아져서인지 평소보다 말이 느려지고 더 의탁하는 내용으로 기도했다.
주님께서 이끄시면 내가 잘 수종들기를 바라는 마음을 아뢰었다.

오늘 공부내용을 점검했다.
지난 시간에 다루지 못하고 빠트린 내용을 확인했다.
모니터로 본문을 띄우려는데 패드가 충전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얼른 아답터를 꽂고 오늘 교보재로 사용할 다른 번역 성경을 찾아 본문을 확인했다.

시간이 남아 커피메이커로 카푸치노 만드는 연습을 했다.
설명서를 보며 만들었는데 처음이라 모든 것이 어색했고 내가 알던 카푸치노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총 석 잔을 만들었는데, 석 잔 째 내가 알던 카푸치노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청소까지 하면서 카페에서 주문하면 금방금방 커피를 만들어내는 직원들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

약속 시간 가까이 되자 차례로 인원이 들어왔다.
차례로 커피의 농도만 물어 원하는 대로 머그잔 절반 분량의 커피를 제공했다.
아무도 카푸치노 이야기를 하지 않아 다행이다.
커피를 마시며 조금 시간을 보낸 후 공부방으로 향했다.

먼저 지난 시간 언급하지 못했던 이야기부터 꺼냈다.
모니터에 인간타락 이야기가 나오는 창세기 3장을 띄웠다.
“지난 시간에 사람이 하나님의 기준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네가 왜 그랬냐?”라고 물으셨는데 먼저 남자에게 묻고 그 다음에 여자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형벌을 내릴 때에도 우리는 보통 남자를 먼저 언급하고 나중에 여자를 언급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조금 다릅니다. 순서를 보면 남자-여자-뱀-여자-남자입니다. 나중에 언급한 여자에 대해 먼저 다루고 먼저 언급했던 남자를 뒤에 다룹니다”
패드에 펜슬로 형광펜처럼 굵게, 대신 남자와 여자에 대한 언급을 색깔을 달리해서 선을 그었다.
“어, 정말 그러네요”
“성경이 고대 문학이기 때문에 그들의 문학적 표현 방식을 이해하면 좀더 재밌게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 때 여자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3장 16절에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남편을 원한다는 것은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의 보호를 바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제가 이 부분을 조금 재밌게 표현한 성경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게 북한에서 출판된 성경입니다”

북한에서 출판된 성경 [사진 강신욱]

세계가 뉴 밀레니엄으로 들뜰 때 북한은 크게 식량난을 겪었다.
내가 담임했던 남서울평촌교회는 1990년대 후반 개척 초기부터 남북나눔운동을 통해 북한의 유아를 위한 분유를 지원했다.
나는 2006년 북한의 유아들이 분유를 제대로 공급받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정부의 공식경로를 통해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북한 관계자로부터 북한 성경을 얻었다.
북한 성경은 천주교와 함께 작업한 공동번역 성경과 비슷하게 번역되었다.
원래는 공동번역 성경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서울-부산을 두 번 이사하는 과정에서 사라졌는지 전날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북한 성경을 보여주게 됐다.

2006년 방북 당시 북한측 초청자의 서명

“예? 북한 성경을 어떻게?”
“정부 허락 받고, 안기부 교육 받고 공식적으로 다녀온 것입니다. 이상하게 보지 마세요”
“물론 그러시겠죠. 그런데, 북한에도 성경이 있어요?”
“예, 공산주의 국가도 대외적으로는 엄연히 민주국가이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를 표방합니다. 그래서 북한에도 공산당이 인정하는 칠골교회나 봉수교회같은 교회가 몇 개 있습니다. 중국도 삼자교회라고 그런 교회가 있습니다. 다만 예배 때 설교나 광고를 통해 공산당을 높이는 일이 있습니다. 그래선 안되죠. 이에 반해 교회당 없이 은밀히 모이는 ‘가정교회’라고 불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중국에는 세력이 크지만 북한에는 아마 거의 사라졌을 겁니다”

북한 성경 창세기 3장 16절

“여길 보시면 ‘너는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질문하죠. 집에서 누가 주도권을 갖고 있습니까?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요?”
“엄마라고 하겠죠”
“이게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남자와 여자를 만드실 때 서로 돕는 배필로 만들었습니다. 외롭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더 행복하게 살도록 만드신 겁니다. 그런데 타락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할 부부가 주도권 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결혼을 앞둔 후배가 있다면 보통 동성의 선배가 무슨 조언을 합니까?”
“초반에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요”
“예, ‘다시 오지 않는 신혼 때 더 많이 사랑해라’가 아니라 경쟁과 다툼을 부추키는 걸 결혼생활의 조언이라고 합니다. 이런 비극이 현대에 들어와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타락하면서부터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요즘 페미니즘이나 남성우월주의는 둘 다 창조질서에서 어긋난 패권주의적 사고일 뿐입니다”
“그렇군요. 이제 조심해야겠네요”
“혹시 부부가 의견이 다르거나 싸우는 일이 있더라도 문 닫고 하시고 적어도 아이들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20년 한 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아직 자녀들이 부모의 그런 모습 때문에 결혼이나 가정을 이루는 것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다른 사람이니 의견이 다를 수밖에 없죠. 그렇다면 계속 대화하면서 의논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의견이 다르면 적으로 여기고 싸워 이기려는 성향이 있는데 적어도 부부 사이에서는 그러면 안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요”
“예, 문 닫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