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 여성들과 성경공부 – 노아의 홍수(1)

4명이 다 모이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2명에게서 각각 연락이 왔다.
공교롭게도 두 가정이 모두 아이가 아픈 일이 생겼다.
감기 기운이 있는데, 이처럼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비상이다.
매일 모임을 위해서 기도하지만 기도한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사이 참석한 한 명에게 전화가 왔다.
시아버지의 전화인데 아이의 이름에 관련된 내용이라고 했다.
아이의 이름을 시아버지가 지으셨는데, 주변에서 이름이 좋지 않으니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는 것이다.
시아버지는 며느리의 의견을 물으러 전화하셨단다.
덕분에 아이들의 이름과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었다.
나는 그 이름들을 메모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아이들의 이름까지 부르며 기도하게 됐다.
내가 기도한 것처럼 4명 전원출석이 이루어지지는 않아 아쉬웠지만, 한 가정에 대해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 감사하다.
잠언 16장 9절의 말씀이 떠오른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

“다같이 진도를 나가면 좋은데 이렇게 됐네요. 이왕 모이셨는데 어떡하면 좋을까요?”
“목사님, 그럼 다른 얘기 해주세요. 원색적인 복음으로”
모임을 주선한 분이 말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다른 분들이 없어 훨씬 개인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기회이니 노골적인 복음제시를 해달라는 말이다.
“아무리 목사님이라도 준비하신 것이 있는데 갑자기 다른 것 하라고 하면 되나요?”
“다른 건 몰라도 이것에 대해선 목사님은 늘 준비하고 계셔. 그렇죠?”
“아, 예, 그렇긴 하지만… ㅎㅎ”
서로 눈치를 보는 짧은 시간이 지나는데, 이런 시간은 정말 길게 느껴진다.
“그냥 원래 하기로 한 ‘노아의 홍수’ 공부하시죠”
내가 제안했고, 공부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창세기 6장에 나옵니다”
화면에 창세기 6장 본문을 띄웠다.
“인구가 점점 많아지는 중에 묘한 일이 생겼습니다. 2절에 나와 있는대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 일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일까요? 4장 마지막에 나왔던 셋의 후예입니다. 셋은 아벨이 죽고 난 다음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 사이에 새롭게 주신 아들이죠. 그 후손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가 된 것이죠. 처음엔 그들이 성을 쌓고 무기를 만들고 폭력을 일삼고 계급을 만드는 가인의 후예와 거리를 두고 살았는데 그렇지 않게 된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어디에서 봤는데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라고 하던데요”
모임을 주선하신 분은 열심있는 분이다.
어디서 책을 읽으셨든지 관련된 설교를 들으신 모양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자체가 놀랍고 귀하다.

“예,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욥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건 분명 천사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단어를 쓰고 있지만 여기서는 천사라고 볼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어떤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고대의 형사취수 원칙에 따라 줄줄이 한 여인과 결혼했다는 가정을 했습니다. 그리곤 예수님께 나중에 천국에서 이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물었지요. 그때 예수님의 대답을 기억하십니까? 천국에서는 남성 여성이 없고, 모두가 천사처럼 된다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천사는 남성, 여성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천사는 영인데 어떻게 사람의 딸들과 관계를 해서 자녀를 낳겠습니까? 그렇다면 천사가 육신을 가졌다는 말인데, 그건 정말 제우스가 육신을 가지고 여인을 범했다는 그리스 신화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한시적으로 천사가 육신을 가지도록 허락하실 일도 없고요. 성경 전체의 맥락을 보면 천사가 육신을 갖고 인간 여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말 듣고 보니 그러네요”

“세속적인 가치와 거리를 두고 살았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결혼동맹을 통해 세속의 권세를 같이 누리게 된 것이죠. 소위 세상 맛을 본 겁니다. 세속적 권력과 폭력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불렀던 사람들이 이제 굳이 하나님을 부를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과의 결탁을 통해 하나님을 부르지 않아도 아쉬울 것이 없으니까요. 하나님을 부르던 하나님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부르지 않게 되었으니 더이상 하나님의 아들들이 아니게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