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탑이 만들어지려면 사회계층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강제노동에 동원되고, 생존에 꼭 필요한 자원을 쓰는 수준이 아니라 과잉소모를 넘어 자연과 환경파괴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인간군상은 함께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도 어려운 마음 없이 파괴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도시 생활이 사람들의 건강에도 좋지 않고요. 몸은 물론이고 마음까지도요.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는 시골생활을 하려고 하잖아요”
“그건 맞는 건 같아요”
“하나님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막으셨는데, 그 방법이 언어를 혼잡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벨’이란 말이 ‘섞다’, ‘혼잡하다’란 의미예요. 갑자기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된 거예요. 물을 가져오라는데 흙을 가져오면 더이상 일을 같이 할 수가 없죠. 아마 마음까지 상하게 될걸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흩어지기 시작했어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한 민족을 이루었겠지요. 천천히 계속해서 사방으로 흩어져 세계적인 민족의 분포가 된 것 같아요. 항해술이 발달해서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의 모습 말예요. 지금은 다시 전세계적으로 도시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심각한 문제지요. 자연도 파괴되고, 인성도 파괴되고. 아마 예전의 바벨탑과 도시보다 지금의 세계적인 고층빌딩이 더 높고 도시도 더 큰 사이즈이겠지만 하나님이 또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지는 않을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미 하나님을 거부하고 대항하는 더 높은 탑과 더 큰 도시가 만들어져 있는 것 같아요. 이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혹시 질문 있으세요?”
“저 질문이 있는데요, 노아가 아들을 저주했다고 했는데 하체를 봤다는 걸로 아들을 저주하는 건 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은 준비하면서 언급할까말까 망설인 부분입니다. 사실 좀 이해가 되지 않지요. 혹시 경상도 욕 중에 ‘세가 만 발이나 빠질 놈아’라는 것 아세요?”
“알죠, 부산 사람인데”
질문한 사람은 아는데 서울 출신이라는 한 명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라는 표정이다.
바벨의 흔적이 작은 성경공부 모임에서도 발견됐다.
“옛날 자식이 너무 속을 썩이면 부모가 자식을 향해 ‘세가 만 발이나 빠질 놈아’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발’은 사람이 어깨 높이로 양팔을 벌렸을 때 이쪽 손가락 끝에서 저쪽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말합니다. ‘세’는 ‘혀’의 경상도 사투리거든요. 혀가 10000발이나 빠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수형을 당한 사람들이 혀뿌리가 빠진 모습으로 죽는다고 하거든요. 아무리 자식이 부모의 속을 썩혔더라도 부모가 정말 자식의 혀가 그렇게 빠지길 바랄까요, 그렇게 처참하게 죽길 바랄까요? 아니죠.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자기 하체를 봤다고 그렇게 심한 저주를 하다니 이해가 되지 않죠. 이걸 갖고 부모는 자식 앞에서 술을 마시는 등 부도덕한 일을 하면 안된다, 자식은 나가서 부모 흉을 보면 저주받는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맞지만 이 내용으로 그런 적용을 하는 것이 맞는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기록에 보면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사람들이 옷을 제대로 입고 다니지 못했다고 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소위 4대 문명이 일어나기 훨씬 전이고 세상에는 노아와 그 가족밖에 없는 상황에 그분들이 궁중복식을 갖춰 입었을 리도 없으니 사실 서로의 벗은 몸을 자주 봤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는 이 부분을 근친상간의 완곡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의 내용 중에 ‘네 어미를 범하지 말라, 그건 네 아비의 하체를 범하는 것이니라’는 게 있습니다. 성경이 신랄하게 표현하는 부분도 있지만 고대문학으로서 완곡하게 표현했을 수도 있지요. 아무튼 노아가 저주를 하고 그 저주가 타당하게 여겨져 임할 만한 상황이 있었다는 데까지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엄밀히 정확한 내용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방주로 구원받은 노아의 집안도 거룩한 게 아니라 심히 복잡하다는 걸 보여주는거죠”
“목사님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좀 이해가 되네요. 고대문학, 복잡한 어떤 상황…”
“예, 거기까지만 생각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