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의 40대 비신자 여성들과 주기적으로 만나서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보통 성경공부 모임은 수요일 오전 10시처럼 요일과 시간을 고정한다.
그러나 나는 모임을 마치고 다음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시간을 맞추자고 한다.
그래서 요일이 왔다갔다 하지만 다들 오후엔 자녀를 챙겨야 하는 엄마들이라 오전에만 모인다.
40대 여성들이 나름 일정이 많아 주로 격주로 모이고 사정상 석 주만에 모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엔 오미크론 영향을 크게 받아 모이기가 쉽지 않았다.
코로나 초기엔 부산의 확진자가 서울이나 경기의 10분의 1 수준이었는데, 최근 심할 땐 절반 수준에 육박했다.
그동안 부산 시민의 13% 이상이 확진을 경험했다.
우리 가족은 아들 둘이 군 복무 중이고, 막내는 기숙형 대안학교에 있다.
셋째만 학교에 다니는 중이고 나와 아내는 사람을 만나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나름 방역이 된 셈이다.
하지만 같이 공부하는 분들의 가정은 상황이 다르다.
한 가족이 전원 확진되는 바람에 모임을 할 수 없었다.
나도 조심하느라 아침 일찍 낮은울타리에서 신속검사키트로 검사했다.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다.
그 소식을 단톡방에 올려서 오늘 모임이 가능하다고 알렸다.
온 가족이 확진을 겪은 분은 격리 기간이 이틀 전에 끝나고 오늘 처음 외출이라며 모임에 참석했다.
남편은 평일인데도 출근하지 않고 가족이 함께 모여 있으니 휴가 같은데 어디로 가자고 하지 않아 너무 좋다고 했단다.
아이들도 특별히 아프지 않고 거의 무증상처럼 즐겁게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공부하는 분만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아주 심하게 아파 계속 누워 있어야 했고, 체중이 2kg이나 빠졌다고 한다.
다들 너무 고생했다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거의 한 달 만에 모여 코로나 이야기 꽃을 피웠다.
코로나를 겪은 분은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오늘은 따뜻한 오미자차를 청했다.
자리를 옮겨 공부를 시작했다.
오늘부터 아브라함을 공부하게 된다.
창세기 12장 본문을 준비하고, 가나안 땅의 지형 설명을 위해 입체감이 있는 모형지도를 준비했다.
다들 테이블에 앉자 테이블 위에 놓인 모형지도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들어서 이리저리 보기도 하고 만지기도 했다.
생소한 지역의 지리 설명이 따분할 수도 있는데 관심 끌기 성공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링컨의 퍼스트 네임을 아세요?”
“아브라함”
“예, 맞습니다. 아브라함은 성경에 나오는 이름입니다. 오늘부터 한동안 아브라함이란 사람에 대해 공부할 겁니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1장 마지막 부분에 처음 언급되는데 본격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12장부터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많은 민족의 아버지’입니다”
“창세기 11장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아브라함이 원래 어디에 살았는지 나옵니다. ‘갈대아인의 우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르’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하류에 위치한 고대 도시였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금속세공사였습니다. 당시 금속세공사는 우상이나 장신구 등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데라가 살던 지역을 떠나 가나안으로 온 가족을 이주시키려 한 것입니다. 우르에서 직선으로 가나안으로 올 수 없었습니다. 유프라테스 강이 가로 막고, 그걸 넘어서는 아라비아 사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길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의 사이를 따라 상류쪽으로 갔다가 멀리 돌아가는 길 뿐입니다. 상류에 있는 ‘하란’이란 도시에 이르러 데라와 다른 식구들은 거기에 정착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했습니다. 그의 인생에 갑자기 하나님이 쑥 들어온 것입니다. 그 내용이 창세기 12장 1절부터 3절까지입니다”
창세기 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우리 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부산에서 한양에 가려면 한 달씩이나 걸렸고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동안 별일 없었을까요?”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기도 했겠죠”
“예, 험한 짐승도 만나고 도적떼를 만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같은 나라에서도 먼 길을 가면 위험한데, 고대 사회에서 아주 먼 길을 가고 다른 민족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자살행위나 다름없을 정도였습니다. 인적 드문 광야같은 곳에서 도적떼를 만날 수도 있고,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이방인을 나쁘게 보고 토박이가 죽이고 노략질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네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의 안정적 직업을 버리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길, 모험을 떠난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님 말씀이랍니다. 다른 사람도 하나님 말씀을 같이 들었을까요?”
“아뇨”
“예, 다른 사람은 모르고 아브라함만 아는 주관적이고 신앙적인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이 들은 하나님 말씀을 근거로 자신의 지역, 자신의 직업, 자신의 친지를 떠나 한번도 가보지 않은 생소한 땅인 가나안으로 떠난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런 아브라함을 향해 뭐라고 했을까요?”
“미쳤군”
“예, 정말 그랬을 겁니다. 그만큼 위험하게 보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생에 ‘갑자기, 쑥’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이걸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어떤 자질이나 조건을 보고 아브라함을 불렀다고 했습니까?”
“아니요”
‘예,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질이나 조건을 보고 부른 것이 아니라 아무런 조건없이 그 사람의 인생에 쑥 다가가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의 존재가 다가오고,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리고,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의 존재가 믿어지는 겁니다. 이건 사람이 간절히 소망하거나 단호한 결심을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어느 순간 갑자기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인생에 그렇게 쑥 들어가셨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다가오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