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을 보호하기 위해 문 안으로 끌어 들이고 소돔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 천사가 급박하게 말합니다. ‘사위나 너와 관계있는 사람들, 너에게 속한 사람들을 다 성밖으로 데리고 나가라’ 롯이 급히 딸들의 약혼자들에게 가서 ‘하나님이 소돔을 멸하실 것이니 같이 피난가자’라고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윗감이 농담처럼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오래 멀쩡하게 유지되는 성읍이 적군이 쳐들어 온 것도 아닌데 하루아침에 어떻게 망할 수가 있냐는 것이겠지요. 상식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상식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판단한 겁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판단하지요”
“새벽 미명이 되었습니다. 천사가 롯의 가족이라도 빨리 피하라고 하는데 롯과 가족들은 주저주저합니다. 사실 믿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 뭘 챙겨서 어디로 피신해야 할지 대책이 없으니까요. 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두 천사가 각각 양 손에 롯과 아내, 그리고 두 딸의 손을 붙잡고 성밖으로 인도했다고 합니다. 성밖으로 나오려면 성문을 통과해야 할텐데요. 보통 성문이 언제 열리는지 아세요?”
“사극을 보면서도 그런 건 생각해 보지 않았네요. 날이 밝아야 열리는 것 아닐까요?”
“그렇지요. 밤에는 보안을 위해 닫아두고, 해가 떠야 안전을 확인하고 성문을 열겁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동트기 전이라도 했으니 성문이 열리기도 전에 롯의 가족이 성밖으로 나온 겁니다”
“어떻게요?”
“글쎄요, 순간이동을 한 것인지, 성벽을 훌쩍 뛰어 넘은 것인지 모르지요. 우리는 그런게 궁금한데, 성경은 롯의 가족이 성밖으로 나온 경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셔서 그렇게 했다고 나옵니다.
“롯의 가족을 성밖으로 이끌어낸 천사가 롯의 가족을 향해 들에 머물지 말고 멀리 산으로 도망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롯이 산이 멀리 있는데 거기까지 도망가기 전에 멸망당할까봐 무섭다며 근처에 있는 작은 성읍으로 도망하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거기가 바로 소알입니다. 여기 지도에 보이시죠?”
내가 지도에서 사해 남쪽 끝자락에 있는 소알을 가리켰다.
“천사는 롯의 가족이 그 성읍으로 도망할 때까지 기다릴테니 빨리 피신하라고 했습니다.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 동이 터오는데,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 지역은 건기와 우기가 구별되어 우기에는 비가 많이 내리고 메마른 곳에 강이 흐를 정도가 됩니다. 우리는 어떤 때 20~30mm가 내리기도 하지만 여긴 그런 수준이 아닌거죠. 한번 내리면 집중호우 수준입니다. 그렇게 하늘에서 불만 내려도 무서울텐데 화약같은 유황도 같이 내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 하늘에서 소돔과 고모라 위로 불기둥이 내려꽂는 것 같았을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안의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천사가 뒤를 돌아보지 말고 부지런히 도망가라고 했는데,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겁니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책에서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내용을 마치 롯의 아내가 가족과 함께 열심히 달리다가 혼자 멈칫하고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갑자기 발부터 점점 소금기둥이 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그런 것 아닌가요? 책에는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같은데요”
“그건 흥미롭게 표현하려다가 너무 그리스 로마 신화처럼 나가버린 겁니다. 그러면 마치 뒤를 돌아보는 여인상이 소알로 가는 길 어디에 있을까요?”
“소금기둥이 되었다면 있지 않을까요?”
“여행 가이드 중에 그렇게 안내하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말 소금기둥이 되었다면 3500년도 넘은 일인데 그동안 비바람을 맞으면서 풍화작용으로 다 깎이지 않았을까요?”
“그러네요”
“일단 제대로 정리하고 넘어갈 것은 멀리까지 도망갔는데 잠깐 뒤돌아 봤다고 소금기둥으로 만들어버리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시켜 롯과 가족들을 구하러 갔고, 그들을 연거푸 설득했고, 산까지 못간다고 해서 근처 성읍까지로 바꿔주기까지 했습니다. 어떻게든 그들을 심판에서 구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고개 한 번 돌렸다고 돌로 만들어 버리시다니요”
“앞뒤를 보니 그렇긴 하네요”
“게다가 소돔과 고모라가 그렇게 되는 걸 롯의 아내만 본 게 아닙니다”
“또 누가 있었나요?”
“예, 아브라함도 동틀 무렵 일어나 소돔과 고모라가 어떻게 되는지 다 봤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요?”
“그러네요. 아브라함은 봐도 되고, 롯의 아내는 보면 소금기둥이 되고…”
“소돔과 고모라가 메두사도 아닌데요. 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이 아닌 거죠. 멀리 도망가다가도 인간적인 미련으로 잠시 돌아보는 걸 기다렸다는 듯이 기둥으로 만들어 버리는 하나님도 아니시고요”
“저는 이걸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멀리서 지켜볼 때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았다고 했습니다. 사실 옛날 돌이나 진흙 벽돌로 지은 성과 집이 불이 나봐야 연기가 치솟을 정도는 아니거든요. 불과 유황이 내렸다고 했으니 마치 큰 폭발이 일어난 겁니다. 엄청난 열과 폭풍이 몰아쳤겠지요. 그래서 천사가 아주 멀리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불이 내려 모든 걸 태웠다면 굳이 멀리 도망갈 필요는 없었을테니까요.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롯의 가족이 그래도 거기서 한동안 살았는데 미련이 없겠습니까? 딸들은 약혼자도 있고요. 저 같아도 한번은 돌아볼 것 같습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단순히 돌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멀리 도망가는 것 자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혼자만 가까이 남은 거죠.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소금기둥으로 변해 버린 게 아니라 폭발의 열과 재에 의해 탄화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폼페이 화산 폭발에 사람들이 그냥 돌처럼 굳어버린 것처럼 말이죠. 물론 그 근처에 암염이 많기는 합니다만…”
“거기에 암염이 있어요?”
여자분들의 주제전환능력은 탁월했고 관심의 폭은 실로 넓었다.
바로 화제를 암염으로 바꾸다니.
“예, 기념품으로 팔기도 합니다. 그건 그렇고 롯의 아내가 정말 여인 모양의 짠맛 나는 소금기둥이 아니라 순식간에 뜨거운 열에 의해 탄화된 것으로 보는 게 더 합리적입니다. ‘소금’이란 단어가 원래 ‘가루’를 일컫는 말이고, 기둥도 둥글거나 각진 기둥을 말하는 게 아니라 단단한 덩어리를 의미하거든요”
“폼페이 화산을 생각하니 이해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