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포크교회를 위한 원두

페이스북에서 기독교와 교회와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는 페친이 있다.
내가 신앙적 글을 올리면 가끔 시비를 거는 듯한 댓글을 올리기도 한다.
어쩌다 우리 아이들이 보고 내게 괜찮냐며 차단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그분을 통해 배우는 점도 있다며 괜찮다고 했다.

그분은 부산에서 보기 드물게 몇 대째 기독교 신앙을 가진 가정 배경을 갖고 있으나 어려운 일을 겪으며 현실 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페친으로는 목사나 선교사가 수두룩하다.
종종 교회나 기독교의 교리를 비판하는 글이나 댓글을 달며 기독교를 옹호하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소신있는 삶을 살거나 수긍이 갈만한 글을 올리면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해 비판하는 게 아니라 나름 기독교다운 기독교를 기대하기 때문으로 보였다.

내가 2018년 수도권 중형 교회를 사임하고 부산으로 내려왔을 때, 내게 가장 먼저 연락하고 밥을 대접한 사람이 바로 이분이다.
남들은 가지 못해 안달인 자리를 왜 떠나 왔는지 정말 궁금했던 모양이다.
알고 보니 부산대학교 영문과 82학번이니 선친의 제자이기도 하고, 내 대학 7년 선배이기도 하다.
나는 내 사연을 이야기했고 아주 특이한 케이스로 받아 들였다.
본인이 왜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게 됐는지도 들려주셨다.
나는 그날 이후 이분을 위해 빼놓지 않고 기도하고 있다.

이분은 그후로 내가 기존 교회 울타리를 떠나 비신자들을 만나고 그들과 꾸준히 모임을 하고 그들과 모임한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을 지켜봤다.
내가 노회의 허락을 받고 교회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하자 ‘비스포크’ 교회라고 이름을 붙여 주셨다.
‘비스포크(bespoke)’는 요즘 가전제품 광고에 나오는 표현인데, 소비자의 요구에 맞춘다는 의미이다.
나는 내가 비신자들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려는 방향이 현재 한국 사회에 필요한 시도라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였다.
‘낮은울타리’라는 이름이 있지만 굳이 ‘비스포크’라고 불러도 전혀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다.

오는 주일이 부활절인데 내가 공개적인 예배를 시작한다고 하자 축하의 뜻을 전해왔다.
그리고 손수 집에서 커피 원두를 볶아 우리집 우편함에 넣어 주셨다.
주로 얼그레이티를 마시는 우리 딸에게 커피 향을 맡아 보게 했다.
“우와!”
실로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향이 좋았다.

실은 주일 모임에 들고 오시라고 했으나 일부러 평일에 우리집 우편함에만 넣고 가셨다.
첫예배 후 주중에 식사나 한번 하자고 하셨다.
소신있는 행보를 하는 목사를 응원해 주시는 마음이 참 감사하다.
커피 맛도 기대된다.

커피 머신과 커피 원두 [사진 강신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