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신자 여성들과 성경공부 – 엄마와 아들(2)

“쫓겨난 하갈은 어디로 갔을까요?”
당연히 아무런 대답이 없다.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하갈은 어느 방향으로 갔을까요?”
“남쪽으로요”
“왜요?”
“이집트 출신이니까 그쪽으로 가지 않았을까요?”
“탁월한 추리이십니다. 비슷합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그랄 부근에 머물고 있는데 하갈은 브엘세바 남쪽 광야로 향했습니다. 광야길을 다니던 사람들도 아니니 하갈과 이스마엘은 길을 잃었습니다. 재산도 없고 땅도 없고 친척도 없으니 사실 갈 곳도 없었지요. 그동안 물이 떨어졌습니다. 이스마엘은 관목덤불 아래 쓰러졌습니다. 하갈은 자기 아들이 그렇게 굶주리고 목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화살로 쏜 거리 정도니까 50~100미터 정도 떨어져 아들 쪽을 바라보며 펑펑 울었습니다. 그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을 불렀습니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인지 다 알면서 꼭 이렇게 물으신다니까요. ‘두려워하지 말라’하면서 답을 주시는데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엄마인 하갈이 아들을 위해 펑펑 우니까 하나님이 움직이신 것 같지요. 그러나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보세요”

“창세기 21장 17절을 읽어 보세요”
“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하나님이 누구의 소리를 들으셨답니까?”
“아이의 소리네요”
“사실 이스마엘이 받은 충격과 슬픔은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아버지 아브라함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10대 후반까지 자랐으니까요. 그런데 하루 아침에 그런 아버지가 자기와 엄마를 광야로 대책없이 내쫓아 버렸잖아요. 아버지와 아버지가 섬겼던 신과 이 모든 세상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마 미칠 것 같은 마음에 그 속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엄마인 하갈은 알아서 목놓아 울기라도 하는데 이스마엘은 제대로 울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표현하지도 못한 그 아이의 소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겁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이스마엘의 고통이 어땠을까 생각하면 너무 아프도록 슬프고, 또 한 편으론 노예의 아들로서 버림받고 광야에서 죽어가는 서자의 소리를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는 점에 뭉클했습니다”

“실은 우리 아이들도 그럴 겁니다. 아직 어리잖아요. 자기가 겪는 상황이 뭔지, 자기가 느끼는 정서가 어떤 것인지, 지금 자기의 상태가 어떤지 파악하지도 못하고, 조금 파악이 됐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합니다. 사실 그건 어른도 잘 되지 않는 거잖아요. 그러니 아이들은 어떻겠습니까? 아이들은 얼떨떨하면서도 답답할 거예요. 그래서 부모가 잘 살펴보고, 물어봐 줘야 되겠지요. 거기에서 아이들은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광야의 이스마엘에게는 엄마인 하갈도 자기 감정에 빠져 우느라 ‘너 어떠냐?’고 물어주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너 어떠냐?’고 물어봐 줘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하네요. 오늘 만나면 ‘너 어떠냐?’고 물어봐야겠어요”

“하나님이 엄마인 하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으로 아들을 일으켜라, 네가 붙잡아 줘라, 그 아이가 민족을 이루는 이루는 것은 내가 해주겠다’ 아이에게 엄마가 해줄 몫이 있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해주십니다. 그건 아이가 장성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다고 합니다. 우리도 살면서 가끔 이런 일들을 당하지요. 전에는 보이지 않다가 눈에 들어오는 것, 전에는 생각도 못하다가 딱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갈이 샘물을 보고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 아들에게 마시게 해서 살렸습니다. 21절에 나오는 ‘바란광야’는 가나안 땅과 이집트 사이의 광야를 말합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은 거기서 사냥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나중에 하갈이 이스마엘의 짝을 얻어 줬는데, 이집트 출신이니까 이집트출신 여인으로 며느리를 삼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