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1장 22절 이하에는 아브라함이 성경에는 블레셋, 요즘으로 하면 팔레스타인의 왕 아비멜렉과 계약을 맺는 내용이 나옵니다. 계약을 맺는다는 건 기본적으로 상대방이 계약 당사자가 될만하다는 인정을 전제로 합니다. 그 지역의 왕이라면 권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명령을 내리지 계약을 하지는 않겠지요.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뭔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아비멜렉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어디 살고 있었다고요?”
모형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대충 그 부근을 오가더니 한 곳을 찾았다.
“그랄이요”
“맞습니다. 아비멜렉의 배려로 제법 오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집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브라함이 어떻게 사는지를 지켜 봤겠지요. 22절에 왕인 아비멜렉과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을 인정하는 말을 합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도대체 뭘 봤는지는 모르지만 왕과 장군이 이런 말을 할 정도면 분명 이들이 이렇게 반응할 만한 뭔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23절에서 좀 묘한 표현을 합니다. ‘내가 너에게 잘 대해 줬으니까 너도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잘 대해줘야 한다’라는 취지의 말을 합니다. 여러분, 이 표현을 잘 보세요. 지금 누가 누구에게 부탁하는 겁니까?”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요”
“그럼 누가 힘이 더 있다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이네요”
“아브라함은 여전히 자기 소유의 땅 하나 없는 나그네인데 어떻게 그 지역의 왕에게서 이런 부탁을 받을 정도가 됐을까요?”
“글쎄요? 왜 그렇죠?”
“저도 모릅니다”
“예?”
“성경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비멜렉과 비골이 왜 그랬는지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아요. 그냥 그들이 본 것을 정리한 표현이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인 겁니다. 아브라함을 건드리면 안된다는 것을 왕과 장군이 확인한 겁니다”
“아비멜렉으로부터 이 부탁을 받은 아브라함이 ‘제가 뭘요, 오히려 여기서 살게 해주셨으니 제가 감사하지요’라고 하지 않고, 자기가 그렇게 하겠노라고 마치 마지 못해 허락하듯 말합니다. 그러면서 ‘바로 이 때다’ 싶었는지 마음 속에 두었던 속상하고 서운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빼앗은 사건이 있었는데 아브라함은 맞서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한 겁니다. 이런 지역의 텃세는 요즘도 있으니 고대 사회에선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말도 꺼내지 못하고 속에 담아 두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걸 보면 아브라함이 약간 뒤끝이 있어요”
“아비멜렉이 ‘나는 전혀 몰랐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 당신도 나에게 말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내게 전혀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이 정식으로 계약을 맺게 됩니다. 서로 계약의 당사자가 된 것이죠. 그 지역의 객이었던 아브라함이 왕과 계약을 체결할 정도의 유력자가 된 것입니다. 이건 부당함을 항의하지 못할 정도였던 아브라함 자신도 잘 모르는 변화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건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들 특히 아비멜렉의 마음이 아브라함을 그렇게 보도록 만든 것이죠.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한 번 등장한 것이 엄청 큰 사건으로 남았던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