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가정은 집안 내부로는 하갈과 이스마엘과의 갈등이 사라지고, 외부로는 팔레스타인 아비멜렉 왕과 계약을 맺어 안전을 거주지와 안전을 확보했습니다. 안팎으로 평안하고 행복한 생활이 시작된 것이죠. 옛날 동화들의 마무리처럼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인데 이젠 그대로 안믿으시죠?”
“그럼요 ㅎㅎ”
“신데렐라든 백설공주든 아무 문제없이 살았을 리가 없죠. 아브라함도 족장으로 여러 식구들 거느리고 목축하면서 사는 입장이니 크고 작은 문제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일상에서 일어날 만한 일이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지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일주일 정도 가야하는 모리아산에 가서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겁니다. 이삭은 그동안 10대 청소년이 되어 후계자로 점점 믿음직하게 자라나고 있는데 말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이미 마음을 접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일부러 와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 예언하고, 이름도 미리 이삭이라 지어주시고, 다른 사람도 인정할 만큼 회춘까지 시켜서 기적적으로 낳게 하고, 잘 커서 10대까지 자랐는데 이제와서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해할 수 없죠”
“만약 이런 요구를 받으시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안하죠”
“저같아도 못할 것 같아요”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과 두 종과 제사를 지낼 나무들을 준비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삼일째 모리아산이 멀리 보였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디라고 했죠? 지도에서 찾아 보세요”
“여기요, 브엘세바”
아직 브엘세바가 입에 익숙하지 않아 지도에서 먼저 찾은 후 지명을 읽었다.
“모리아산은 지금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을 찾아 보세요. 아브라함이 주로 다녔던 산지 길에 있습니다”
“여기 있네요”
“브엘세바에서 예루살렘까지 직선거리로는 70km 정도 떨어져 있지만 광야의 험한 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빤히 보이는 곳인데도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브엘세바는 저지대이지만 예루살렘은 700미터가 넘는 고지인 점도 있고요”
“눈에 보이는 정도가 됐을 때 아브라함은 두 종에게 짐을 지고 온 나귀와 함께 그곳에 머물러 있으라고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둘만 가서 제사하고 오겠다는 겁니다. 만약 종들이 끝까지 함께했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할 때 ‘주인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왜 이러십니까? 제 정신입니까?’라며 붙잡고 말리면 아브라함도 대책이 없는 거죠. 여기서 종들을 떼어 내는 건 아브라함이 정말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작정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순종하기 싫은 명령이라면 ‘하나님, 저는 순종하려 했는데 종들이 붙잡고 말리는 바람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변명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럴 수 있는 일을 원천봉쇄해 버렸습니다. 이게 아브라함의 진심인 거죠”
“아마 종들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족장인 아브라함이 혼자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자주 봤을 테니까요. 이제 후계자인 이삭에게 그걸 전수하려나 보다 짐작했겠지요.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들고, 이삭은 나무를 지고 모리아산으로 향했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엄청 복잡했을 것 같아요”
“아브라함도 사람이니까 그랬겠죠? 아브라함을 한 번 크게 흔드는 일이 생깁니다. 아들 이삭이 질문한 겁니다. 보통 제사를 지내면 제물로 쓸 양이 필요한데 양이 없으니까 이삭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양이 어딨냐고 물은 겁니다. 이 때 아브라함이 정직하게 대답한다고 ‘제물은 너다’ 그랬으면 어땠을까요?”
“글쎄요?”
“이삭이 농담으로 여겼을 수도 있고, ‘진짜 나를 죽여 제물로 삼으려나?’하고 도망갈 수도 있겠지요. 아브라함은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라고 대답했어요. 아브라함의 믿음의 고백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론 아들 이삭을 안심시키려는 아비의 배려일 수도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