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정하신 곳에 도착한 후 이삭과 함께 돌을 옮겨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제단 위에 불을 붙일 나무도 잘 얹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아브라함이 이삭을 붙잡아 꼼짝 못하게 묶고 제단 나무 위에 눕혔습니다. 저는 이 때 이삭의 마음이나 반응이 참 궁금한데 성경은 그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관심은 100세에 얻어 잘 자라는 외아들 이삭을 잡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에게 집중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2장 10절에 보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진짜 이삭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진짜인가요? 너무 한 것 아닌가요?”
“진짜 죽이고 끝장낼 것이었다면 아브라함은 제 정신이 아닌 거죠. 그리고 그런 요구를 한 하나님도 이상한 것이고요. 창세기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브라함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걸 기록해 놓은 곳이 신약성경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부터 19절까지입니다. 같이 볼까요?”
히브리서 11:17-19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이럴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셨던 약속을 기억한 것입니다.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는데 이삭이 죽어버리면 하나님이 스스로 당신의 약속을 깨는 것이 됩니다. 두번째는 자신이나 아내 사라가 죽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출산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몸이었는데 다시 살아난 것처럼 회춘하여 건강하게 아들을 출산하게 만드셨으니 설령 자신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삭을 죽이더라도 하나님은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은 신약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생겨난 게 아니라 구약의 성도들도 이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건 부활신앙까지 가진 걸 의미한다는 겁니다. 이게 정말 놀라운 거죠. 그냥 무작정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줄 생각해서 순종한 거예요. 보통 사람은 비이성적 상태로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오히려 지극히 이성적 판단을 통해 비이성적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순종을 감행한 겁니다. 이것이 진짜 기독교 신앙의 색깔입니다”
“이해되는 것 같으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그래야 너무 뻔하지 않죠. 너무 뻔하면 재미없잖아요”
“11절에서 하나님이 하늘에서부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두 번이나 부르시는 걸 보면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근엄한 분위기를 잡고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천천히 부르시는 게 아니라 조금 급하게 부르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로서 깊은 고민이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확실한 부활신앙을 가지고 주저없이 행하는 모습에 아브라함을 빨리 불러 멈추지 않으면 안되겠는 거지요. 하나님은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을 향해 ‘네가 나를 정말 경외하는구나’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기서 처음 ‘경외(敬畏)’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표현한 단어인데, 그 수준을 아브라함의 태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행동의 준거로 삼는다는 거죠”
“너무 어려운데요. 모든 기독교인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
“아니요. 저도 그렇게 못살아요. 아브라함도 늘 그렇게 산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고 그렇게 기뻐하신 걸 알면서 왜 그렇게 살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요. 왜 그럴까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는데 잘못될까봐서요”
“맞아요. 제가 목사지만 저도 그럴 때가 있어요. 안될 것 같고, 실패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아무리 살펴봐도 상황이 그런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말씀보다 상황과 제 판단을 더 믿게 되는 거죠. 그냥 제 뜻대로 해버려야 속이 시원하니까요”
“하지만 ‘믿음’은 여기서 다르게 움직이게 하지요. 두 가지를 기억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를 기억하는 거죠. 그리고 내 눈으로 보고 내 머리로 판단한 걸 믿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면 상황이나 자기 판단과는 반대로 가는 거예요. 혹시 영화 ‘인디애나존스 3편’ 보셨어요?”
“본 것도 같고…”
“거기에 인디애나 존스가 절벽을 건너는 장면이 나와요”
“아, 본 것 같아요”
“거기에 보면 그냥 절벽인데 그 절벽을 건너는 방법은 그냥 허공에 발을 내딛는 거래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하니 죽을 각오를 하고 발을 허공에 내딛었어요. 그런데 떨어지지 않았어요. 거기에 마치 숨은그림찾기하듯 절벽의 색깔과 똑같은 다리가 있었던 거예요. 보이지 않아서 내딛지 않았을 땐 몰랐지만 믿음으로 내딛으니까 다리가 있었던 걸 깨닫게 된 거죠. 하나님을 믿는다는 건 그런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