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3장 1절부터 8절까지 3명이 한 절씩 돌아가며 읽었다.
한글은 표음문자라 음가를 안다면 읽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평소 글자를 소리내어 읽지 않기 때문에 의외로 소리내어 읽기를 잘 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본인이 잘 읽을 줄 생각하지만 정작 소리내어 읽을 때 물 흐르듯 잘 읽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특히 성경은 평소에 쓰지 않는 단어와 표현들이 많아 더 그렇다.
나도 설교를 준비할 때 성경본문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연구하지만, 설교 직전에 성경본문을 소리내어 읽기를 연습한다.
성경을 소리내어 읽는 것은 눈으로 읽는 것과는 다른 읽기이다.
책을 소리내어 읽을 때 눈으로 읽을 때보다 뇌가 더 활성화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난 성경공부 전에 한 절씩 돌아가며 읽기를 선호한다.
“1절부터 8절까지 어떤 단어가 눈에 자주 띄시는 가요?”
“‘때’란 단어가 많네요”
“맞습니다. 한 눈에 봐도 많이 보입니다. 그럼 2절부터 8절까지 ‘때’란 단어가 몇 번이나 반복되는지 한번 세 보시겠어요?”
대여섯 번 정도가 아니라 의외로 시간이 걸렸다.
늘 그렇듯 부인이 먼저 대답했다.
“28번인 것 같은데… 맞나요?”
나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남편에게도 물었다.
“남편분은 몇 번인 것 같으세요?”
“저도 28번 같은데요”
“맞습니다. 2절부터 8절까지 7절에 걸쳐 각 절마다 정반대의 개념을 2개씩 언급하고 있습니다. 14개의 구절마다 2번씩 ‘때’를 언급하니 28번이 맞지요”
“3장에 들어서면서 솔로몬이 ‘때’ 곧 ‘시기’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을 알게 됩니다. 실은 1절에 ‘때’와 ‘기한’이란 단어가 나오기 때문에 1절부터 8절까지 ‘때’란 의미의 단어가 30번 반복되는 겁니다. 성경에 이렇게 자주 반복하면서 강조하는 예가 거의 없을 겁니다. 읽는 사람 입장에선 ‘한 절 한 절이 보배와 같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인데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건 전도서가 지혜서이긴 하지만 크게는 시가서에 속하는 것 아시죠?”
“예”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산문으로 읽지만 전도서가 운문이란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도 시적 표현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정말 그러네요. 전도서가 시가서라고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읽으려고 하지 않았네요”
“1절의 ‘범사’와 ‘천하만사’는 인간이 겪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거기엔 모두 때와 기한이 있지 않습니까? 두 분은 이 겪는 일들과 이 일을 겪는 시간이 마음에 드세요?”
“아니요?”
“만약 일과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제 마음에 들도록 배치하겠지요. 어려운 일은 빼고, 꼭 겪어야 한다면 짧게 지나가도록 하겠지요”
“솔직히 말씀 잘해주셨습니다. 맞습니다. 실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요. 겪는 일과 그 때를 자기 마음대로 정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 때를 사람이 정할 수 있나요?”
“아니요”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솔로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절은 그걸 인정하는 문장입니다. 그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신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을 신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고 하지만 실은 하나님께 내가 당할 일과 시간을 내 뜻과 계획대로 되게 해달라고 구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기독교를 떠나겠다고 협박하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오늘날도 끊임없이 하나님 되려고 하는 선악과를 따먹는 겁니다”
“나는 선악과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듣고 보니 그러네요”
“2절부터 8절까지 나오는 14개의 정반대의 개념들은 우리 인간이 겪는 일들의 양면성을 나타냅니다. 100% 좋은 일이나 100% 나쁜 일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는 일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거부당하는 일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양면성을 가집니다. 태어난 것은 죽기 마련이고, 세워진 것은 허물어지기 마련이고, 올라간 것은 내려오기 마련입니다. 젊을 때는 그걸 거스르려고 하죠. 혈기와 노력으로 최선을 다하고 부딪혀 그 흐름이 자기에게는 오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디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두 분은 어떠세요?”
“우리가 뭘 바꿀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처럼 득도하셨네요. 그걸 깨닫는 과정이 인생인 것 같습니다”
“또 생각해 보아야 할 한 가지는 여기 나오는 개념들 중 처음 보시거나 모르는 것 있으세요?”
“없는데요”
“그렇죠? 실은 우리가 당하는 인생사에 모르는 개념은 없습니다. 내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알죠. 그러나 당할 때는 마치 처음 그런 개념을 알게 된 것처럼 놀라고 당황하지요. 그걸 다시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쉬운 예를 든다면 뜨거운 국물을 먹으면 ‘앗, 뜨거’라고 소리를 냅니다. 아주 뜨거우면 입안을 데기도 하죠. 그런데 다음에 또 뜨거운 국물이 나오면 입안을 델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또 그냥 입을 갖다 댑니다. 그리고 또 ‘앗, 뜨거’라고 합니다. 뜨거움을 겪었으면서도 전혀 적응되지 않아요. 우리 인생사가 그렇습니다. 실은 우리가 하루하루 거의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는데 또 한편으로는 2022년 오늘은 지난 50여 년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순간이니까 완전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거죠.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복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