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값 내는 목사

고등학교 선배와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 2명은 만난지 20년도 더 된 것 같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친구들이라 목사 친구 만나기가 껄끄러웠을 게다.
한 명은 줄담배에 말술을 했었는데 10년 전부터 둘 다 끊었단다.

1차로 고기를 구워 먹고 2차로 펍을 갔다.
나는 콜라를 시키고 선배와 1명은 맥주를 시키고 금주한 친구는 4샷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내가 “4샷 아메리카노의 카페인은 거의 니코틴 수준 아니냐?”고 물었더니 생각보다 약해서 그 정도는 아니란다.

맥주는 1인당 2병씩 더 시켜 총 6병이 테이블에 놓이게 됐다.
친구는 한 브랜드를 계속 시켰지만 선배는 매번 다른 브랜드를 시켜 형형색색의 병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방금 고기와 된장찌개와 밥과 라면을 먹은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술이 들어갔다.
술이 들어가니 속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식당에서 2시간을 보냈는데도, 펍에서 2시간 넘게 대화를 이어갔다.
학창시절 얘기부터 인생 우여곡절까지 여백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특히 식당에서 2시간을 보낼 때는 전혀 언급하지 않던 내 이야기를 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말도 섞지 않았던 친구인데 부고를 듣고 멀리까지 찾아간 것이나 담임목사 기득권을 내려놓고 초기 기독교 스타일로 목회하려는 시도가 대단하고 좋게 보인다고 했다.

어찌 가만 있을쏜가.
내가 술값을 계산했다.
선배가 목사가 술값을 내면 안되는 것 아니냐며 본인이 계산하려고 했다.
나는 아무 문제 없다며 카드를 내미는 목사 플렉스를 보였다.

62,800원.
내가 평생 처음 결재한 술값이다.
불교신자인 친구들이 목사에게 앞으로 자주 보잔다.
대화는 밤 11시까지 이어졌는데, 4샷 커피를 마신 친구가 집앞까지 승용차로 태워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