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별회에서 본 샘물

부산에 온 지도 1년 반이 지났다.
수도권에서 20년 넘게 살았으니 부산에는 옛날 친구들 외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페이스북으로 서로의 소식을 보고 답글을 달다가 오프라인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있다.

그중 이신혜 전도사님이 8월 11일에 대전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이신혜 전도사님도 부산 사람이 아니라 지인이 별로 없다.
오프라인에서 만났던 사람들끼리 송별회를 해주자고 했다.
장소는 낮은울타리로 정했다.

처음엔 일단 모였다가 차 한 대로 식당으로 가려 했다.
생각을 바꿨다.
직접 상을 차려 대접하고 싶었다.
음식을 할 줄도 모르면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파트 포장마차로 들어와 안면있고 맛을 보장하는 돈가스와 새우 튀김을 주문하고, 마트에 가서 샐러드용 채소와 햇반을 샀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들 40이 넘은 사람들이니 느끼할 것 같아 콜라와 밀키트 된장찌개를 샀다.
그리고 밀키트 된장찌개의 짠맛을 줄이려고 찌개용 두부를 한 모 더 샀다.

먼저 찌개를 끓이기 시작하고, 두부를 썰어 넣고, 채소를 썰고, 큰 접시에 채소를 벌여 놓고, 돈가스와 새우 튀김을 보기 좋게 얹고, 소스를 종지그릇에 각각 담고, 햇반을 전자렌지에 돌리고, 수저를 챙기고, 새우 튀김에서 꼬리를 못 먹는 사람을 위한 접시까지 준비했다.
마치 20분간 달리기를 한 느낌이었다.

부산 덕천동에서 신대원생들을 위한 방학 중 성경특강을 하는 정민교 목사님이 가장 먼저 도착했고, 이어 김해에서 이신혜 전도사님이 도착했고, 식사하기 직전 찬양인도사역을 하는 권오성 목사님이 포항에서 도착했다.
열심히 했는데 차린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시장이 반찬이다.
일단 나는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좀 느끼해서 콜라와 된장찌개를 같이 먹고도 해소가 되지 않아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달맞이길에 있는 카페에서 먹은 블루문에이드 [사진 강신욱]

후식은 달맞이길에 있는 넓고 시원한 카페에서 먹자고 했다.
여름 메뉴가 아주 시원하고 양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SNS에 올린 걸 보여주면 텀블러도 준다.
블루문에이드로 통일하고 SNS에 각각 올렸다.
텀블러 소진시까지 진행한다는 이벤트였는데 텀블러가 3개만 남아 있었다.
우리가 내려갔을 때 다른 사람들이 이벤트에 참여하려는 것 같았다.
우리가 먼저 확인 받고 텀블러를 받아 전리품처럼 음료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는 텀블러가 많아 멀리 이사가는 이 전도사님에게 하나 더 선물했다.

정 목사님은 내게 개척교회의 담임목사로서의 고민을 질문했고, 이 전도사님은 중형교회 담임을 내려놓게 된 동기를 묻고, 대형교회 교육부서 담당 교역자로서의 고민을 말했다.
나는 각각 나의 시행착오를 말해줬다.
중간중간 너무 분위기가 진지해지는 것 같아 농담처럼 말한 부분도 있는데, 다들 웃으며 긴장을 식혔다.
40대 초반 목회자들이 이전 세대를 답습하지 않고 뭔가 바르게 해보려는 고민과 쉽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참 보기 좋았다.

아직 샘물은 흐른다.
한국 교회에는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