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시즌2] (7)창27:1-4

시간이 흐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시즌1때는 오전 시간이 편했는데, 몇 달 사이에 오전에 모일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피곤하고 쉬고 싶은 오후 시간에 성경공부를 하러 모이시는 분들이 감사하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도 한 분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늦을 사람이 아닌데… 목사님, 혹시 연락 받으신 것 있어요?”
“아니요.”
“제가 연락 한번 해볼게요.”
전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린다.
모임을 새까맣게 잊고 있었단다.
금방 오겠다고 했다.
급히 와서 그런지 평소와는 달리 정말 편한 복장으로 오셨다.
덕분에 다들 한바탕 웃고 복장을 화제 삼아 또 이야기를 한 보따리 한 것 같다.
시간은 지났고 준비하고 나오려면 힘들고 귀찮으니 그냥 이번은 쉬겠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와주셔서 참 감사했다.
다음부터는 하루 전에 단톡방에 내가 알림을 올리기로 했다.

“보통 ‘성경’이라고 하면 어떤 느낌을 가지세요?”
“거룩한 책, 뭔가 심오해서 보통 사람들은 잘 깨달을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죠.”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요?”
“뭔가 남달라서 하나님과 잘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성경의 인물들은 우리가 본받을만한 위인으로 여기고, 성경의 이야기는 도덕적으로 사회 통념보다 훨씬 기준이 높고 아주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성경이 전혀 그렇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참 복잡하고 수치스러워 남에게 이야기할 수 없고,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엉망진창이 된 가정의 속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까?”
“성경에 위인들만 나오면 우리같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책이 됩니다. 다르게 말하면 ‘재수 없는(?)’ 책이 되는 거죠.”
“맞아요. 잘난 사람들만 나오면 좀 재수가 없어요.”
“성경은 보통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책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작은 일로 시비를 따지고, 가정일로 고민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 하고, 예상치 못한 고난에 힘들어 하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야 읽으면서 ‘나도 그랬어.’라고 공감을 하지요. 다만 그 와중에 하나님이 그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와 주시는지, 그들이 어떻게 깨닫는지, 그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태도를 갖게 되는지가 나온다는 점이 성경의 특징입니다.”
“성경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니 위로가 되네요.”

“전에 쌍둥이가 나왔던 것 기억하세요?”
“예.”
“에서와 야곱이란 쌍둥이인데, 이란성 쌍둥이같습니다. 둘은 쌍둥이인데도 전혀 닮지 않았거든요. 한 명은 털이 북실북실하고, 한 명은 매끈했습니다. 성격도 달랐어요. 털이 많은 에서는 외향적이라 들판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잘하고, 매끈한 야곱은 집에서 어머니의 일을 도왔습니다. 개성은 다양할 수 있으니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평범한 가정 같습니다. 문제는 이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사실에 인간의 죄성이 더해지면 아주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는 겁니다.”
“27장 1절에 보면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때 이삭의 나이가 137세쯤 되었습니다. 아주 많은 나이지요. 눈도 보이지 않고 거동도 많이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많아 노쇠해졌지만 인생으로서도 가장으로서도 족장으로서도 지혜와 처신에서 진지하고 원숙미가 넘칠 만합니다. 그런데 2절부터 4절에 보면 가장으로서도 족장으로서도 좀 의외의 말을 합니다.”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좀 이상한 점 못 느끼시겠어요?”
“잘 모르겠는데요.”
“일단 자주 반복되는 단어를 찾아 보시겠어요?”
“뭐죠? 모르겠는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대로 찾으시면 됩니다.”
“음…’내’요?”
“네, 다른 분들도 보이시죠?”
“생각보다 단순하네요.”
“성경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비밀을 풀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이미 다 풀려 있는 설명서입니다. 보통 사람이 읽고 쉽게 찾고 깨달으라고 쓰여진 책이니까 그냥 보이는 대로가 맞습니다. ‘내’가 5번 나오고 역시 1인칭인 ‘나’가 1번 나오니까 총 6번 나오는 겁니다. 140세가 가까운 노인이며 족장이 아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하기엔 너무 자기중심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네요. 마치 유치원 아이처럼.”
“여기서 우리는 이삭의 입맛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은 ‘양식’이 아닌 ‘자연산’을 좋아했습니다.”
“ㅎㅎ 자연산요?”
“집에서 기른 짐승보다 사냥한 짐승을 좋아했으니 ‘자연산’을 좋아한 거죠. 이상한 점은 또 있습니다. 족장이 아들에게 축복을 한다는 건 옛날 조선시대로 하면 ‘세자책봉식’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공식적으로 해야지요.”
“그렇죠. 가족과 종들에게 알리고 축복을 받는 아들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받고 정통성을 인정 받게 해주고, 모두가 함께하는 잔치를 열어야 되겠지요. 그런데 사냥 잘하는 아들이 사냥을 해오면 그것을 먹고 축복하겠다는 겁니다.”
“가장이 왜 그런 거죠? 정말 이상하네요.”
“제가 엉망진창인 가정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잖습니까?”
“그래도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이니까 조금 이상할 줄 알았는데, 이건 많이 이상한데요.”
“성경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쓴 책이 아니라 인간의 실상을 보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가정의 이야기는 앞으로 더 심각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