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교회 나가는 게 어려운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뭔가요?”
“교회에 가면 ‘해라, 하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잖아요?”
“그렇죠. 그런 내용이 많죠.”
“그런데 우째 그리 살 수 있습니까?”
“당연히 못살죠.”
“그러면 교회 가서 하나님 눈치 봐야 하고, 잘못한 것 보고해야 하잖아요. 그게 너무 불편합니다.”
“하나님이 무서우세요?”
“예, 하나님이 무섭습니다.”
“아…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신데요.”
이분이 미션스쿨을 다니셨다고 했는데, 도대체 학교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궁금했다.
한편으론 50년 전 부산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대충 짐작이 되기도 한다.
“자녀분들이 어릴 때 잘못하면 엄마가 아세요, 모르세요?”
“다 알죠.”
“그러면 알자마자 왜 이렇게 잘못했냐고 혼내셨나요?”
“그럴 때도 있었고, 아닐 때도 있었죠.”
“잘못했는데 왜 혼내지 않으셨죠?”
“아이가 말해주길 기다린 거죠.”
“아이가 말하지 않으면 호적에서 파셨어요?”
“예? 호적에서요? ㅎㅎㅎ 어떻게 그래요.”
“왜요? 힘들게 낳고 길렀는데 배은망덕하게 엄마 말도 안듣는 자식 그냥 확 파버리면 속썩이는 사람도 없고 딱 좋아지는데요.”
“ㅎㅎㅎ 말씀도 재밌게 하시네요. 파버리고 싶다고 파지나요?”
“맞습니다. 그게 부모자식이죠. 하나님을 우리가 뭐라고 부르죠?”
“하나님 아버지요.”
“아버지는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엄마는 자녀에 대해 다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그런데도 사랑하신 겁니다. 우리가 지은 죄도 다 아십니다. 아까 하나님께 보고한다고 하셨는데 그때 지은 죄를 다 보고하셨어요?”
“아뇨. 많이 빠졌겠지요. 그래서 더 불안해요. 하나님을 믿는데 편안한 게 아니라 불안하니까 기독교가 싫어졌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별일 없었는데요. 대신 마음이 불편했지요.”
“하나님이 무서워서 거부하고 싶고, 그래서 교회도 안가시는데 왜 불편하셨을까요?”
“그러게요. 이상하네요.”
“옛날 자녀분이 잘못하고 엄마의 시선을 피했을 때 마음이 어땠을까요?”
“불편했겠죠.”
“그때 엄마 마음은 어떠셨어요?”
“안쓰러웠죠. 잘못했다고 하면 용서해 줄 건데요.”
“잘못했다고 안하면 용서하지 않으셨나요?”
“에휴, 어떻게 그래요?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야죠.”
“하나님도 똑같습니다. 다 아시지만 ‘너, 이랬지? 너 왜 빼먹고 보고 하니? 이렇게 하면 내가 용서해 줄 것 같애?’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아버지시니까요.”
“그렇군요.”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이야기 못해서 불편한 것도 다 아십니다. 엄마도 아는데 하나님은 당연히 아시지요. 심지어 언제 말하나 망설이고, 무슨 말을 어떻게 말해야 하나 하는 마음까지도요. 아직도 하나님이 무서우세요?”
“아니요.”
“부모님이 아이에게 규칙을 요구하고 꾸중을 할 때 자녀가 미워서 그러나요?”
“아니요. 다 잘 되라고 하는 거죠.”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을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이미 보이셨습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잘못해서 부모를 무서워할 때도 있지만 결국 부모의 품에 안겨 평안을 얻고 잠이 들듯이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신뢰하듯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에 대한 무서움이 다시 찾아오면 내 잘못을 기억하지 마시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