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이제 소원을 풀었습니다”

내가 담임을 했던 남서울평촌교회가 교회당을 신축한 2010년부터 2017년까지 8년간 경비반장을 너무도 잘 감당해 주신 윤용노 어르신을 댁으로 찾아뵀다.
사시는 곳이 오산이라고 해서 언약교회 청년부를 수련회를 마치고 1시간 조금 걸리지 않는 거리를 찾아갔다.
아파트 앞에서 전화를 드렸더니 로비로 내려오셨다.

“반장님,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아이고, 목사님, 여기까지 오시고…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요. 이제 소원을 풀었습니다.“
바깥 공기가 너무 차서 인사를 여쭙고 과일 상자만 전해드리고 가려 했는데 굳이 집으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괜찮다고 여러 차례 사양을 했는데도 커피 한 잔 하라시며 상을 차려 내셨다.

정성스레 준비해 주신 다과상 [사진 강신욱]

우유가 들어간 좋은 커피라고 하셨다.
이런 잔에 이런 맛의 커피를 마셔본 것이 도대체 언제였던가.
오늘 내겐 보약 한 사발과 다름없었다.
”반장님, 제가 기도 한 번 하겠습니다.“하고 기도를 했는데 건강하게 반장님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기도 중간중간 “아멘”이라고 하셨다.
윤 반장님은 우리 교회에서 처음 교회를 접하고, 실장님의 배려로 수요예배가 예배 참석의 전부였던 분이지만 교회를 정말 자랑스럽게 여기고 좋아했던 분이다.

“반장님, 실은 작년에 문자를 드렸는데 아무런 답이 없어 혹시 먼저 천국에 가셨나 해서 마음이 좀 그랬습니다.“
”제가 문자를 할 줄 몰라서요.”
“행정실장님 덕분에 연결이 돼서 이렇게 뵙게 되어 저는 올해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어디에서도 저같은 사람 만날 수 없다고 문자를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건 정말입니다. 반장님 같은 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시죠?”
“여든일곱입니다 ㅎㅎ”
“그렇게 안보이세요. 6년 만에 뵙는 건데 그럼 그때 이미 여든이셨던 거네요?“
”그랬죠 ㅎㅎ“
”예배당 짓고 처음부터 8년간 반장님이 계셔서 정말 미더웠고 좋았습니다.“
”저는 남서울평촌교회 덕분에 제 삶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사업하며 돈도 들어먹고 하루에 담배를 두 갑씩 폈습니다. 나이도 많은데 일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했는데, 경비실 옆에서 담배를 폈는데 사람들이 보고 웃으면서 지나가시는 거예요. 나중에 행정실장님이 ‘여기서 담배 피시면 안됩니다’라고 말해 줬습니다. 목사님과 교인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라 좋게 봐주신 거지요. 그리고는 제가 담배를 끊었습니다. 아마 남서울평촌교회가 아니었으면 저는 진작 병 걸려 죽었을 겁니다.”
“아닙니다. 반장님이 너무 성실하고 좋으신 분이니까 좋게 본 거죠. 다들 반장님을 칭찬했습니다.”
“목사님이 이 근처 계시면 교회도 갈텐데…”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오늘 부산까지 내려가야되서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목사님, 가까운 곳에 농협이 있는데 거기서 곶감을 사드리고 싶습니다.”
아…. 곶감이라니…
내겐 곶감에 관한 사연이 있지 않은가.
그냥 울컥했다.
애써 참고, “반장님, 오늘 너무 춥습니다. 다음에 또 올테니 그때 주세요.”라고 했다.
“목사님, 부탁이 있는데요. 나와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사진관에서 뽑아서 액자에 넣어 둘랍니다.”
“당연히 찍어야죠. 안그래도 반장님과 사진을 찍고 싶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문자로 보내드렸다.

주차장까지 가는 길에 반장님의 손을 잡았다.
반장님과 손 잡은 걸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으니 그 사진도 보내달라고 하셨다.

반장님의 손등이 많이 보이게 찍은 사진

내가 사진을 찍은 다음, 반장님은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차를 타고 차창을 내리고 다시 손을 잡았다.
반장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그냥 떠날 수 없어 다시 내려 반장님을 껴안았다.
반장님은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목사님, 이제 언제 다시 봅니까?”
“반장님, 제가 3월 초에 서울 올 일이 있는데요, 그때 오산에 들르겠습니다.”
그제야 안심하시는 것 같았다.
“꼭 찾아 뵙겠습니다.”
재차 약속하고서야 오산을 떠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