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서울평촌교회 행정목사일 때 담임목사님이 교역자를 선발할 권한을 주셨다.
신학대학원 재학시절 위로 2학년, 아래로 2학년을 경험하게 되는데 눈여겨 보았던 1년 후배인 이남행 목사님이 사역을 쉬고 있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같이 사역하자는 제안을 했고 이 목사님은 기꺼이 응해서 같이 부목사로서 서로 도와가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당시 교회당이 상가에 있을 때 월요일에 폭우가 내렸다.
월요일이라 교역자에게 휴일이었지만 난 행정목사로서 혹시 교회당에 열린 창문이 있는지, 비가 새지는 않았는지 염려되어 교회당으로 가서 살폈다.
그런데 이남행 목사님도 왔다.
담임목사님이 가보라고 시키거나, 내가 오라고 부르거나 만 그냥 교회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온 것이다.
난 그때 이 목사님은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사역을 하면서 늘 마음이 맞았던 것은 아니다.
사람이 다른데 어떻게 생각이 같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목사님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믿었기에 나는 그를 신뢰했다.
그러다가 내가 2004년 담임목사가 되었다.
같이 부목사로 있다가 내가 담임이 되었지만, 이 목사님은 나를 담임으로 깍듯이 존중하고 따라주었다.
원래 선교사 지망생이었던 이 목사님은 몇 년 뒤 선교훈련을 받았고, ‘이대로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창의적 접근지역 소수민족을 위해 남서울평촌교회의 파송을 받았다.
목숨의 위협을 느낄만큼 위험한 선교지에서도 참 귀하게, 꿋꿋이 사역했다.
남서울평촌교회는 그런 이대로 선교사님을 참 좋아했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2018년 내가 담임을 사임하자, 이 선교사님은 속이 많이 상했던 것 같다.
내가 설명하고 설득해서 성도들이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교회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침 소속 선교단체에서 멤버케어부 대표를 맡게 되어 국내에 있었던 이 선교사님은 이모저모로 성도를 챙기는 역할을 했다.
솔직히 그동안 각자가 사는 서울과 부산만큼이나 격조했다.
마침 사진 속에 있는 이대로 선교사님네 둘째가 부산 지역 대학에 진학해서 겸사겸사 부산에 오게 되어 연락이 왔길래 내가 낮은울타리로 초대했다.
그동안 대면하지 못해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흉금없이 터놓고 나눴다.
옛날 이야기부터 지금 서로가 감당하고 있는 부분까지.
예전 같았으면 왜 그랬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겠지만 지금은 둘 다 풍파를 겪으며 달라졌다.
인생의 절반을 함께했던 사이로서 서로를 측은히 여기기도 하고 한 바탕 웃기도 했다.
앞으로 종종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