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이 장남인 에서 대신 차남인 야곱이 축복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괘씸하다고 생각했겠죠.”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 후에 아이가 없다가 아이를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쌍둥이를 임신하게 된 것 기억하세요?”
“예.”
“그때 하나님이 첫째와 둘째 중에 누가 높아질 것이라고 하셨는지 기억하세요?”
“둘째요.”
“그런데 아비인 이삭은 누굴 높이려고 했죠?”
“첫째요. 그러고보니 이삭이 잘못했네요.”
“잘못했죠. 하나님이 둘째인 야곱을 택하셨다는 걸 알면서도 이삭은 자기의 식성을 따라 첫째인 에서를 편애했고 심지어 슬그머니 비공개로 족장의 권한을 이양하려고 했으니까요. 나름 에서를 확인하고 축복하려고 더듬기까지 했는데 아내와 둘째에게 완전히 속아 야곱에게 정성어린 축복을 하고 말았습니다. 일의 전말을 알고 나니 하나님이 처음부터 야곱을 택하셨다는 걸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렇겠네요. 신을 거스를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것 같아요.”
“맞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사람이 솔로몬인데, 그 솔로몬이 쓴 격언을 모아놓은 책이 있습니다. ‘잠언’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우리도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계획도 짜고 열심히 실천도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되던가요?”
“아니요. 정말 뜻대로 되는 게 없어요.”
“이삭은 나이가 137세나 되고, 눈이 멀어 거동을 잘할 수 없는 형편인데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다가 딱 걸렸습니다. 사람이 참 무섭습니다. 그 나이에, 그런 형편인데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니까요. 심지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족장이 말입니다.”
“그러네요. 이삭은 그러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좀 실망인데요.”
“안되는 줄 알면서도 하는 게 인간입니다. 여러번 말씀드립니다만 성경은 위인전이 아니라 인간의 실상을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런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을 보게 만드는 책입니다.”
“이삭이 드디어 노욕을 꺾게 됩니다. 그게 어떻게 드러나냐면 정식으로 야곱을 불러 축복하는 겁니다. 옛날 족장 사회에서 아비를 속이고 족장을 바보로 만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벌을 받아야죠.”
“야곱은 큰 벌을 받아야 마땅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야곱을 불렀지만 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자신도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죄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삭은 야곱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주고 야곱에게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이것이 이삭에게는 하나님께 항복하고 뜻에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이삭은 야곱에게 아브라함이 가족을 떠나왔고, 리브가의 친정인 밧단아람으로 가서 거기서 신부감을 찾으라고 합니다. 지도에서 밧단아람을 한번 찾아볼까요?”
늘 헬몬산 자락에서부터 네게브 사막까지 있는 이스라엘 지도만 봤으니 당연히 시선이 이스라엘 지도를 향했다.
“밧단아람은 이 지도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밧단아람은 지금으로 말하면 시리아 북부에 있습니다.”
나는 다른 지도를 펼쳐 밧단아람의 위치를 설명했다.
“엄청 머네요.”
“예, 이 멀고 험한 길을 야곱이 가야만 했습니다.”
“한편 에서가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불렀고 야곱에게 말한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속은 아버지가 야곱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야곱에게 준 축복이 확실하다고 도장을 찍어주는 겁니다. 그리고 신부감을 구하러 어머니 리브가의 친정인 밧단아람으로 가라고 한 이야기까지 듣습니다. 에서는 아버지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돌아선 것을 감지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확인하고 난 후 자신에게 축복하지 않은 결격사유가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왜냐면 사냥을 잘하는 호탕한 남자였던 에서는 이미 그 지역의 여인을 두 명이나 아내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 사실이 이삭과 리브가의 근심거리였다고 했습니다. 에서는 아버지의 마음을 돌이킬 방법을 찾습니다. 아버지의 라이벌이었지만 아브라함의 서자로서 그래도 아브라함의 핏줄이라 할 수 있는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이합니다.”
“예? 또 장가를 가요? 그게 축복을 받지 못한 진짜 이유가 아니지 않나요?’
“맞습니다. 우리도 아는데 당사자는 몰랐네요. 그래서 먼 혈족의 며느리를 맞았으니 이삭과 리브가가 기뻐했을까요? 며느리가 세 명이나 되었으니까요.”
“전혀 안기쁠 것 같은데요. 골치가 아플 것 같아요.”
“그것이 이삭과 에서가 살던 브엘세바의 집안 분위기였습니다.”
“성경책의 분위기가 왜 이렇죠?”
“왜요?”
“교훈이 되고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보면 볼수록 칙칙한 것 같아요.”
“실은 그게 우리 인생이죠. 안그런 척하며 살고 있지만 다들 해결하지 못하는 인생의 짐을 지고 칙칙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자가 필요한 겁니다.”